“비판적으로 기존 개념 재검토하고, 천천히 살 수 있는 환경 만들어야”

[연재] 학문이 환경재앙을 만났을 때

(1) 환경과 인류학

기술은 자본주의 하에서 생산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제주도의 잠수(潛嫂)들은 온전히 자신의 신체만으로 수산물을 채집하고 있다. 잠수들은 잠수기선, 스쿠버다이빙 장비 등을 통해 더 많은 수산물을 채취할 수 있는데도 왜 ‘효율적’인 생산방식을 이용하지 않는 것일까?
더 오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기도 하지만 인류학자들은 그 답을 사회관계에서 찾는다.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잠수들은 잠수기선 등의 기술을 도입해 경쟁적 관계를 만들기보다 서로 노동력을 제공하는 균형적 호혜관계를 지향한다. 또 그들은 ‘잠수굿’ 의례를 통해 바다를 착취의 대상이 아닌 ‘요왕할망(바다여신)’이라는 하나의 인격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인류학은 하나의 현상을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총체적으로 고찰한다.

최근 자원고갈, 온난화 등 전지구적 환경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 해결책은 주로 탄소세,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처럼 정책적, 기술적 방법에 국한된다. 하지만 인류학은 환경문제를 인간 스스로의 문제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인간과 환경의 관계 속에서 환경문제를 바라본다.

경제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효율성 개념을 활용하곤 한다. 경제학에서 논의되는 효율성이란 투입재의 화폐가치에 대한 생산물의 화폐가치의 비율로 그 비가 1 이상이면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인류학자들은 경제학적 개념인 효율성을 생태적 효율성으로 확장한다.  생태적 효율은 생태계의 구조와 구성요소들의 종간 관계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생태적 효율성은 하위 수준의 영양단계에서 축적된 에너지가 상위 수준의 영양단계로 옮겨간 에너지의 비율을 뜻한다. 식물의 생태적 효율성은 태양의 복사에너지 중 식물이 흡수한 에너지의 비율이다. 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구역과 기간 동안 성장한 식물을 건조시킨 후 측정한 무게에서 식물이 생장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미네랄 무게를 제한 값을 알아야 한다. 건조물량에서 미네랄량을 뺀 값이 식물의 순 생산량이기 때문이다. 순 생산량에 식물이 호흡할 때 소비한 에너지양을 더하면 식물이 흡수한 에너지의 총량이다.하지만 생물체량이나 에너지를 측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생태적 효율성은 도출하기가 힘들다.

 때문에 인류학자들은 종간(種間)생태적 효율성 대신 종내(種內)‘에너지 효율성’을 주로 사용한다. 에너지 효율성이란 에너지를 대상으로 한 경제적 효율성으로 투입된 에너지와 산출된 에너지의 비율로 측정된다.
제주도 잠수들의 어획방식은 경제적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기계적 어획에 비해 에너지 효율성은 높다. 때문에 인류학은 전통적인 어획방식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경제적 효율성을 기준으로 진행되는 기계적 어획은 에너지 효율성을 무시한 채 어획을 계속해 자원을 고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학자들은 이처럼 기존 용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재정의한다. 경제발전은 경제성장과 사회문화적 변동 모두를 포함한 경제체계의 전이 과정으로 재정의한다. 인류학은 경제발전이 인류문화의 전반적인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을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또 하나의 발전’ 개념이다. 이덕성 교수(경북대ㆍ고고인류학과)는 “‘또 하나의 발전’은 재화의 증대가 아니라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인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되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더불어 합리적으로  재화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류학은 생활방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총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전경수 교수(인류학과)는 『똥이 자원이다』, 『똥도 자원이라니까』에서 똥을 퇴비로 순환시킨 전통농경문화에 주목한다. 그는 “똥은 흙과 섞이면 자원이 되지만 지금과 같이 물과 섞이면 독소를 생산해 환경을 파괴한다”고 지적한다. 또 지난 5월 ‘사멸위기 문화유산의 현재와 대책’이라는 주제로 열린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에서는 인류학자들이 모여 전통문화 속에서 환경 친화적 가치를 찾기도 했다. 지난 1986년 시작돼 지금까지 각광을 받고 있는 슬로우푸드 운동도 생활방식을 변화시켜 환경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인류학적 시각과 같은 맥락이다. 슬로우푸드 운동은 패스트푸드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슬로우 철학을 실천하는 운동이다. 19세기 돼지가 도살중량인 60kg에 도달하기까지 2∼5년이 소요됐다. 반면 20세기 초에는 100kg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11개월로 줄었다. 오늘날에는 반년이면 충분하다. 패스트푸드가 대량 소비되는 ‘빨리빨리 문화’ 속에서 축산업도 속성재배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은 이윤을 위해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현대문명의 대표적 폐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계는 광우병의 발병원인, 치료방법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고, 당국은 검역주권을 강화해 이를 예방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광우병의 해결책으로 정책이 아닌 ‘문화개선’을 제안한다. 지난 2002년 한국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에서 강신표 교수(인제대ㆍ문화인류학과)는 「슬로우푸드운동과 한국의 전통문화」라는 주제발표에서 “속도위주의 공장형 축산경영이 지속되는 한 광우병은 계속 발생할 것”이라며 “슬로우푸드 운동의 주장처럼 속도와 이윤 경쟁에서 벗어나야 광우병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류학은 인류학적 지식을 응용해 특정 개발 사업이 추구하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최근 기술적, 경제적 문제로 간주되던 개발문제가 가치의 문제와 결부되면서 이와 관련된 인류학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박순영 교수(인류학과)는 “인류학은 인간 사고와 행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통해 개발이 근거하는 가치를 평가하고, 복잡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판별해 내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녀’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말로 학계는 일본식 용어를 극복하고자 본래 해녀를 뜻하던 제주 방언을 토대로 ‘잠수’를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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