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교육 자율화 개인이 주체가 돼야 치밀한 준비 없이는 ‘업적 쌓기’에 그쳐

사범대 불어교육과
지난 7월 24일 프랑스 고등교육부 장관 발레리 페크레스(Pecresse)는 내년 1월 1일부터 대학행정자율화가 실시될 20개 대학명단을 발표했다. 이 대학들은 무상교육의 틀 속에서 학생 수에 따라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던 국가 의존체계에서 벗어나, 학교행정, 재정, 연구체계의 자율화를 실행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학교운영비를 확보하고 예산을 세워 교육정책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이제 ‘공교육의 천국’으로 불렸던 프랑스 대학에도 인재 유치와 국제 수준의 대학의 질을 갖추기 위해 불가피한 자유경쟁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이 ‘필요하지만 내키지 않는 개혁’은 크게 대학의 예산 집행과 교수 임용, 기부금 조성,  교육행정의 자율권을 허용하는 정도다. 학비와 학생 정원은 지속적으로 국가가 관리한다. 아마도 이는 경쟁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는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도 대학교육에 동등한 접근 기회를 줘야 한다는 공화주의 교육철학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7월 2일의 스트라스부르 연설에서 그가 “경쟁을 유럽연합 정체성의 지주로 여겨선 안되며 시장의 독재에 복종해서도 안된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프랑스 우파정권의 경쟁개념과 한국의 우파정부의 경쟁개념이 상당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 창의적 인재양성은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최우선적인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규제를 혁파하고 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교육 자율화를 위한 개혁은 매우 절실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다양성과 창의성을 추구하는 이 자율화가 소수 엘리트와 일부 기득권 집단의 획일화란 독약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것들이 적지 않다.

몇 가지만 언급한다면, 첫째 자율화의 진정한 주체는 어떤 집단이나 조직이 아니라 각 학교에 속한 개개인들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율화로 인해 얻어야 할 것은, 일부 기관, 학교, 학과의 기득권이나 학교 운영집단의 권한 강화가 아니라, 교수자의 교육과정 편성권과 학습자의 교육과정 선택권이다. 이 속에서 교육주체들이 학문과 사상의 자유, 도덕적 가치의 수호, 공동체의식을 통한 교육의 본질과 역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자율화다.

둘째, 자율화 대 평준화라는 잘못된 대립관계 설정이다. 수월성 교육의 암초는 결코 평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입식 암기교육과 교육과정에 대한 관료적 통제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자사고, 특목고, 자유전공제 등 수월성 신장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더라도 교육내용과 방식이 획일화되어 성적에 따른 줄 세우기를 한다거나, 주입식 교육에 매여있다면 창의적 인재 양성은 불가능하다. 단순한 지식전달로는 자율 속에 포함돼 있는 복합적인 사고력, 판단력, 비판력을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진정한 자율화는 ‘학교 자치’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필히 요구한다. 교육의 이상과 가치를 자율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해관계와 주장들이 충돌하는데, 이것을 열린 토론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수렴하는 치밀한 장치가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자율화가 정부와 정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권의 또 다른 업적 쌓기의 결과물로 전락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의 형식적인 자율화를 이룬 것에 만족한 위장된 자율화로는 자기 분야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교육(사업)자들과 사심이 가득한 행정가들이 결합된 ‘교육마피아’의 수중 속으로 이 나라의 교육을 통째로 바치는, 심히 우려할 만한 결과만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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