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에 나오는 얘기다. 옛날에 기성자라는 이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길렀다. 왕이 물었다. “닭이 되었느냐?” 이에 기성자는 “아직 안되었습니다. 지금은 쓸데없이 허세를 부리고 자기 힘만 믿습니다”고 답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또 물었다. “아직 안되었습니다. 다른 닭의 소리나 모습만 보아도 덤벼듭니다.” 열흘 후 대답 역시 ‘아니오’였다. “아직도 상대를 노려보고 혈기왕성합니다.”

그리고 열흘 뒤, 기성자의 답은 바뀌어 있었다.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어도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보면 마치 나무로 깎아 놓은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것입니다. 다른 닭이 감히 상대하지 못하고 돌아서 달아나 버립니다.”

여러 가지 비판과 일부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서울대는 그 존재 자체가 사회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순(耳順) 가까운 연륜과 사회적 역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서울대 안팎에서 일어난 몇몇 사례는 서울대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1. 85~87년 서울대 총장을 지낸 박봉식(72)씨가 2월23일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총장은 자민련 지구당위원장으로 있던 99년 12월 평소 알고 지내던 업자 김아무개(43)씨를 통해 최아무개(43, 여)씨에게 경기 용인시 토지공사 소유 땅을 수의계약을 통해 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현금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대 설치령에는 “총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감독하며, 학생을 지도하고 학교를 대표한다”고 돼있다. 하지만 서울대 총장은 이보다 훨씬 높은 상징성을 지닌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대한민국 최고 지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비록 관선 총장이었지만 일반사람이 느끼는 권위와 평가는 결코 가볍지 않을 터다. 서울대를 비롯해 3개 대학교 총장을 지낸 그는 2000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경험도(!) 있다. 냉철한 지성이 타오르는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한다.

서울대는 존재 자체로 사회의 버팀목
최근의 몇몇 사태는 서울대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아

#2. 〈서울대 법대 법학동 건물 로비가 ‘유민홀’로 명명된다. 서울대 법대 한인섭 교무부학장은 “홍석규 서울대 기성회장(보광 사장)이 최근 서울대 법대 발전기금으로 4억원을 기부했다”면서 “이 기금은 17년 된 법학동 건물 로비를 비롯한 건물 1층 전체를 개겫맑置求?데 사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부학장은 “고 유민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한국 법조계에 끼친 공로 등을 고려해 새로 단장될 법학동의 로비를 ‘유민홀’로 명명해 후학들이 본받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3년 6월 13일자) 〈4.19 당시 서울시내 의거군중에 무차별 총탄을 퍼붓게 하여 2백여 명의 생명을 뺏고 1천여 명을 부상하게 한 발포원흉 홍진기(전 내무부장관) 등 6명의 특별재판 첫 공판이 11일 상오 특재대법정에서 열렸다. 특재 제2심판부(재판장 홍남표) 심의로 열린 이날 공판에는 도피중인 조인구(전 치안국장), 이상국(전 치안국 특정과장) 등 2명을 제외하고 홍진기, 곽영주(전 대통령 경호관), 유충렬(전 시경국장), 백남규(전 시경 경비과장) 등 4명이 나왔었는데 최성윤 검찰관은 공소장 낭독을 통하여 작년 4월 19일 낮 1시경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의거 학생 수천명이 경무대 어귀로 몰려들었을 때 곽영주 조인구 홍진기는 실탄 발포명령을 내릴 것을 모의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 검찰관은 이들이 발포모의를 한 뒤 이상국유충렬백남규에게 지시했으며 발포 지시를 받은 피고인들은 각 서장에게 지시, 경무대 앞에서 8명 무기고 앞에서 3명 시내 각 서 부근에서 180명을 살해하게 함과 아울러 1천여 명의 의거 군중에 총상을 입히게 했다고 지적했다.〉 (민족일보 1961년 4월 12일자)

법무부 장관과 내무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60년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을 치른 홍 전장관(1917~1986)은 중형을 선고받고 얼마 안 있어 석방됐다. 그후 동양방송 사장(65년)과 중앙일보 사장(68년)과 회장(80년)으로 종신했다. 유민홀 옆에는 ‘정의의 종’이 세워져 있다. 4.19 혁명 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야 한다”며 동문 교수 학생들이 뜻을 모았다고 한다.

옛 사람들 중에는 나무로 깎은 닭을 몸에 지니면서 자기수행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이상기 한국기자협회 회장 (서양사학과 81학번, 87년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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