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종말

앤드류 달비 지음┃오영나 옮김┃작가정신┃560쪽┃2만5천원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국제중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한다. 중학생들은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목표 중 하나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이들도 취업을 위해 토익 시험을 준비한다. 외국 대학원 진학을 계획하는 이들도 토플 점수를 위해 영어를 공부한다.

지난달 24일 영국 언어학자연구소의 명예회원 앤드류 달비의 『언어의 종말』이 번역·출간됐다. 책의 원제(Language in Danger)처럼 한국어는 이미 위험에 처해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영어는 헌법이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 일정한 지위를 갖고 있고, 학교에서도 가르치는 ‘국가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사회적인 환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큰 이견이 없다. 책의 주요개념 중 하나인 ‘언어의 전환’은 한국에서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저자는 특정 지역의 언어사와 현재 세계의 언어분포 현황을 보여주면서 ‘익숙하지만 절실한 경고’와 ‘낯설면서도 섬뜩한 경고’를 동시에 한다. “평균 2주에 1개의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경고는 놀랍지만 익숙하다. “전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사용하는 언어가 겨우 12개에 불과하다”는 말도 한번쯤 들어본 적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언어 병용이 대개 세 세대를 거치면 한 언어는 사라진다”는 말은 섬뜩하다. 이 경고 뒤에 ‘100여년이 흐른 뒤 한국에 ‘한글’은 사라지고 ‘Hangul’ 혹은 ‘Hangeul’만이 남을지 모른다’라는 말이 숨어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금하다. “인류가 모두 영어만 쓰면 우리의 생활이 더욱 편해지는 것은 아닐까?”

공부할 분량이 줄었다고 기뻐할 이유는 없다. 저자는 “전문가에서 전문가로 전승되는 계통이 단절된다면 우리는 지역의 지식을 전부 다시 수집해야 할 것”이라며 “각 문화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만 축적된 지식들을 후세에 물려줄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들이 보유한 세계관은 언어마다 달라서 다른 언어로 전승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어로 번역된 중국의 고시(古詩)나 한국의 시조는 그 독특한 형식미와 감성을 담기 힘들다. 이밖에도 해당 언어가 아니면 후대에 전할 수 없는 축적된 지식의 예는 책에 다수 등장한다. 저자는 언어가 소실될 때마다 인류가 향유하는 삶의 질이 저하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영어를 외면하고 살기는 힘들다. 저자 역시 “새로운 언어로 전환하고 있는 사람을 설득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저자는 “언어가 사라지면서 왜 우리의 미래가 위협받는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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