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술, 뜸, 한약 등 한의학의 치료법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중은 과학과 한의학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의학이 경험적 치료에 의존한다는 통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학신문』은 한방의 달 10월을 맞아 ‘한의학의 과학화’를 위한 한의학계의 노력과 국제적 성과에 대해 알아봤다.

◇한의학의 과학화, ‘표준 정립’이 출발점=한의학계는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한의학의 표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국제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는 『전통의학 국제 표준 용어집(WHO-IST)』을 발간했다. 최승훈 교수(경희대·한의학과)의 주도로 이뤄진 이 사업에는 한중일 등 서태평양지역 국가 한의학자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세번의 ‘WHO-IST 개발을 위한 비공식 회의’를 개최한 후 용어집 초안을 작성했고 이를 수차례 검토한 뒤 최종안을 확정했다. 표준화된 4천여개의 한의학 용어가 수록된 이 용어집은 영어로 번역·출간돼 서양의학과의 소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됐다. 최승훈 교수는 “표준 용어집 발간은 한의학의 과학화에 가장 기초가 되는 사업이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의학 임상진료지침의 표준화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의의를 평했다.

최근에는 이 표준 용어집을 바탕으로 전통의학의 질병을 체계화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한중일과 베트남이 참여한 이 사업은 현재 초안이 작성됐다. 이 분류는 시험단계를 거쳐 WHO 국제 질병 분류에 전통의학부분으로 추가될 예정이다.

또 지난 6월 19일에는 『WHO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이 출간됐다. 경혈 위치에 대한 논의는 한중일의 침술에서 사용되고 있는 경혈의 명칭이 같더라도 위치가 다른 경우가 발견됐다는 연구 결과에서 출발했다. 이렇게 위치상 차이가 나는 경혈은 총 361개 중 94개나 된다. 실제로 한국과 일본의 경우 체했을 때 침을 놓는 엄지와 검지 사이의 ‘합곡(合谷)’의 위치가 서로 달랐고 심한 충격을 받는 등의 응급상황 시 침을 놓는 ‘수구(水溝)’는 한일과 중국 간에 차이를 보였다. 한중일 삼국의 한의학자들은 2003년부터 4년에 걸쳐 11차례의 회의를 진행했고 지난 6월 19일 표준안을 최종 발간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현수 회장은 “침구경혈부위 국제표준 마련은 한의학의 효율성 및 부가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다”며 “한의학 관련 보건의료 산업의 발전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통의학, 세계와 만나다=최근 한의학계는 해외 학자들과의 교류도 활발히 진행중이다. 지난달 30일 한국한의학연구원(한의학연)은 ‘전통의학의 새로운 도전: 융합기술과 전통의학의 만남’을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미국 등 세계 각국의 학자가 참여해 전통의학과 첨단기술 간의 융합연구 동향에 대해 활발히 논의했다.

이혜정 교수(경희대·한의학과)는 이날 ‘침구경락과학의 융합연구 현황’에서 “침 바늘 재료의 변화 등 융합연구를 통한 치료법의 효능 향상을 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현재 전기전도도가 높은 은을 사용해 미세한 자극에도 효과를 지속시킬 수 있는 은나노침이 개발됐고 생의학적 방법으로 침 표면 거칠기에 변화를 줘 침 자극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또 이 교수는 “현재 한국의 침과 관련된 ‘전통의학’에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등 신경과학적 기술을 접목해 침 치료의 과학적 근거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 등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가 소장을 맡고 있는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는 한의학에서 눈질환 치료에 이용되던 경음혈과 지음혈을 자극한 후 시각기능과 관련된 대뇌피질 후두엽의 시각피질을 관찰했고 그 결과 경혈자극의 효능을 최초로 규명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중국의 장 웨보 교수(중국 중의과학원), 일본의 카와키타 켄지 교수(일본 메이지국제의료대·물리학과) 등이 영상과 전기적 신호를 활용한 침 연구에 대해 발표했다.

또 지난 4일(토)부터 이틀간 대전대에서는 ‘침구경락의 과학적 근거’를 주제로 ‘한의학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됐다. 한의학연, 경락경혈학회, 대한약침학회의 주최로 열린 이 학술대회에는 한국, 중국, 미국, 독일, 멕시코 등 11개국 34명의 학자들과 300여명의 한의학 관계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노벨의학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던 케이젤 푹세 박사(스웨덴 왕립카롤린스카 연구소)는 ‘이합체와 수용체 모자이크 내에서 수용체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제목으로 한의학과 신경과학의 만남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신경세포들이 주고받는 신호를 전달하는 중요한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수용체와 신경자극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이 연구는 파킨슨병이나 운동장애,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아직 한의학적으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한약으로 된 신약개발과 침의 기전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SCI급 논문에 도전한다=대한약침학회는 최근 세계약침학회와 함께 영문 한의학 학술지 「Journal of Acupuncture and Meridian Studies」(JAMS)를 발간했다. 편집장을 맡은 소광섭 교수(물리천문학부)는 “한국 한의학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SCI급 논문이라고 생각한다”며 “「JAMS」가 국제수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동양 전통의학과 관련해 SCI에 등재된 학술지는 30여개에 달하지만 한국의 학술지는 전무한 상황이다.  대한약침학회 강대인 학회장은 “외국의 학술지들은 침과 경락을 양의학의 입장에서만 연구했지만 통합의 측면에서 한의학의 입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학술지 발간의 취지를 밝혔다.

한의사이면서 미국 하버드 의대와 클리블랜드클리닉 등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한 바 있는 채한 교수(부산대·한의학전문대학원)는 “정부 투자 연구비를 기준으로 성과를 비교할 때 한의학이 어느 분야보다도 높은 실적을 보이고 있다”고 한의학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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