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비용도 못 갚고 돌아갈 수는 없어…”

▲"우리에게 생존권을" 지난 25일(수)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강제출국 방침 철회를 요구하며 농성을 하고 있다. © 김응창 기자

지난 2월 25일(수) 명동 성당 입구. 고층 건물들 속에 허름한 천막이 눈에 띈다.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103일째 ‘강제추방 저지와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를 위한 농성을 하고 있는 곳이다. 10평 남짓한 천막에서 60여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매일 잠을 자고 밥을 먹는다.

지난해 7월 고용허가제가 국회에서 통과되자, 정부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을 강도 높게 단속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4년 이상 체류한 외국인 노동자는 자진출국하면 6개월 이내에 합법적인 절차로 재입국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주노동자들은 이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한국 체류 노동자의 국적은 20개 정도인데 정부가 발표한 재입국 가능 국가는 4~5개뿐이다. 또한 이들 노동자들의 재입국과 취업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 문제 등 장기적인 대책도 전무한 상태다.

무책임한 정부를 향해 이주노동자 농성단은 ▲강제추방중단 ▲미등록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고용허가제 개선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자진출국 거부운동을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8년 전에 한국에 왔다는 자히디씨(방글라데시, 30세)는 “우리는 산업연수생 자격으로 한국에 오기 위해 1000만원 가량의 돈을 썼다. 아직 그 빚도 다 갚지 못했는데 정부는 벌만큼 벌었을 테니 떠나라고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들을 돕고 있던 평등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외국인 산업연수생들이 브로커, 회사, 정부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에서 고액의 브로커 비용을 부담한다”고 말했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문제점이 지적되자 정부는 대안책으로 고용허가제를 내놨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력의 도입과 관리를 정부가 직접 담당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산업연수생 제도와 다르다. 하지만 고용허가제 역시 개악안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아노와르씨(방글라데시, 33세)는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데, 기업주들이 이를 미끼로 임금체불, 인권유린 등을 자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또한 정부가 체류기간이 4년 이상인 외국인 노동자를 분리해 강제 출국시키는 것에 대해 농성단 김혁 상황실장은 “도대체 4년이라는 기준이 어디서 나온것인지 모르겠다”며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4년동안 입국 비용도 갚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외국인력정책과 홍정우 사무관은 “원칙적으로 모든 불법 체류자가 출국해야 하지만 인력공백문제와 인권 문제를 고려해 송출비용 손익분기점인 4년 체류자를 기점으로 강제 출국 대상자 기준을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홍 사무관은 “우리나라가 미국과 같은 이민 국가가 아닌 이상 외국인의 정주화(定住化) 현상은 미리 예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휘창 교수(국제대학원 국제학과)는 “기술과 인력의 효율적인 수입은 그 나라의 경제발전과 국제적 이미지 창출에 큰 역할을 한다”며 “장기적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 명동성당 농성단의 점심 메뉴는 미역국과 김치였다. 요리사 우다야씨(네팔,35세)와 그 주위에 모여 음식을 기다리던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좋아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며 섭섭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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