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서평 - 우석훈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

경제학자 우석훈씨가 지난달 27일 『괴물의 탄생』을 출간하면서 그간 화제를 몰고왔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전에 출간된 3권의 책이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한국경제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집중한다.

『88만원 세대』로 출발한 우석훈의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역설적이게도 ‘괴물의 탄생’으로 끝을 맺었다. 괴물을 저지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책의 제목은 ‘괴물의 탄생’보다 ‘괴물의 해체’가 더 어울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기존의 질서를 해체해야 한다는 데리다 식 ‘해체’가 절실해 보이지만, 해체의 힘 혹은 해체의 주체는 지금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라고 반문한다. 우석훈은 현 단계 한국경제의 우울한 상황을 진단하면서 괴물이 곧 파시즘을 탄생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호러경제학’이라고도 불리는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는 한국사회의 절망적 상황을 조목조목 짚는다.

◇괴물로부터 한국을 지킬 수 있는 무기, ‘제3부문’=괴물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괴물은 2~3%로 추정되는 한국의 지배층과 그들의 지배를 공고하게 만드는 건설경제, 지방토호 등의 구조가 결합하면서 탄생한다. 저자는 “건설경제 등 현재 구조가 지속되는 한 부(富)는 2~3%의 지배층에게 고착화되고, 전 국민의 95%가 ‘88만원 세대’인 비정규직으로 돌변하면서 한국은 중남미형 경제구조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중남미형 경제구조에서 국민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1929년 발생한 대공황 속에서 이탈리아와 독일이 파시즘을 선택한 것처럼 저자는 한국도 파시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스템론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현재의 경제구조를 스위스처럼 변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추구하는 스위스 모델은 “에너지와 자원의 투입은 줄이고 지식과 문화의 투입은 늘리는 국민경제”다. 우석훈은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혹은 괴물의 해체를 위해 ‘제3부문’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3부문은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기보다 호혜성, 종교적 신념 등과 같은 공공선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일본의 생협, 북유럽의 가족형 기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례로 3부문이 발달한 스위스에서는 호혜성에 의해 주2일제 근무가 시행되고 있다. 임금은 1/3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정규직 채용을 돕고 남은 시간은 독서, 여가생활 등 문화적 활동에 투자할 수 있다. 3부문 종사자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탈포드주의 시대에서 경쟁력인 창의성을 계발하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일에 숙련될 기회가 봉쇄된 비정규직과 달리 정규직 종사자는 지식을 계발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저자가 제안한 3부문 대안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3부문이 정말로 실현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가 만들어야 할 대안은 더 많은 대화와 협의를 통해서 사회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밀은 『자유론』에서 ‘생각과 토론의 자유’를 주장했고, 밀턴은 『아레오파지티카』에서 “진리를 향한 논박이 허위를 억제하는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우석훈이 말하는 한국경제의 대안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비판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희망의 경제학’을 위한 생산적 비판=저자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의 고백과 달리 이 책에서 제시한 대안은 단지 희망의 메시지로만 보일 수도 있다. 각종 일간지가 저자의 책을 두고 ‘재미없는 이론 대신 한국 자본주의의 ‘필패론’을 분석하고 적나라하게 공격하는 대중적 글쓰기’라면서도 ‘대안도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이상에 가깝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인터넷 진보신문 레디앙의 이재영 기획위원은 『괴물의 탄생』을 비판한 바 있다. 그는 3부문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우석훈의 논의가 당위론적 설명에 그친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북유럽에서 발달한 3부문은 자영농민에 기반을 둔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등 자연사적으로 형성된 측면이 크다”며 “한국사에서 3부문이 될 수 있는 기원을 살펴보고, 현재의 상황에 대한 연구가 우선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석훈이 3부문을 낙관적으로 전망한 데 반해 이 기획위원은 현재 한국에서 3부문이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농협 등 비영리 협동조합적 경제체제가 존재하지만 3부문으로 기능할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그는 “농민과 국가가 공동출자해 농협이 만들어졌지만 실제로는 일부 계층에서만 향유되고 있다"며 “3부문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가격을 낮추는 등 대중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우뚱한 균형』에서 우석훈의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바 있는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과)도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당위론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정책적으로 가능한 대안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투자를 통해 3부문을 개발하는 등의 대안이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치밀한 정책적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고 관념론으로 흐르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고 외치면서 명랑주의를 표방하는 저자의 주장은 파격적이고 시원하다. 그러나 김 교수는 우석훈의 주장이 단순한 시각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20대가 고시촌, 독서실 등 밀실에서 벗어나 광장에서 정치집단화를 꾀할 것을 주문하지만, 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섬세하고 체계적인 접근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스위스 모델을 예로 들며 “인구가 5백만인 스위스의 모델을 4천만에 이르는 한국에 단순 적용한 것은 저자의 열정이 넘쳐 이상론으로 흘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아쉬워했다. 스위스는 직접민주정치체제, 지방분권구조 등 한국과 다른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대안의 탄생’을 기대한다=『괜찮다, 다 괜찮다』 등 공지영의 위로 3부작이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독자는 각박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 위로의 글을 찾아다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시크릿』 등 자기계발서를 통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배우도록 강요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전에 위로를 구하게 만들고 계발을 부추기는 사회를 분석해볼 필요도 있다. 사회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서술이 돋보이는 우석훈의 저작이 절실한 이유다. 나오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그의 책은 충분히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가 풀어내는 개념은 모호하고, 엄밀한 이론을 구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혹(惑)’한 주장보다 ‘힘(力)’을 가진 주장을 읽고 싶다. 생산적인 대안을 갖춘, 매‘혹’적이기보다는 매‘력’적인 저작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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