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문화코드의 핵심 ‘아이들’
외환위기에 빼앗긴 그들의 꿈
새로운 문화의 꽃 피울 세대
모두가 ‘제2의 서태지’로 거듭나길

문화부장
‘서태지와 아이들’. 9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에게 이들은 신화적 존재였다. 경제성장만을 외치며 살아가던 대한민국의 국민들, 하지만 서태지는 도리어 그들에게 외쳤다. 졸라맸던 허리띠를 풀라고.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하지만 그들은 1996년,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 마치 그 다음해에 닥칠 IMF 구제금융이라는 대위기를 예감이라도 한 듯이.

90년대의 또 다른 주축이었던 엑스세대. 이들은 어찌 보면 당시의 대표적인 문제아들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들은 90년대 문화코드의 핵심이었다. 누가 엑스세대를 사회질서나 어지럽힌 녀석들이라고 욕할 것인가. 이 신(新)세대들은 서태지와 마찬가지였다. 빠르게 성장했던 경제와는 달리 문화적 역량이 부족했던 대한민국. 그러나 그들은 정면으로 세상에 도전했다. 자신들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먹고, 놀고, 또 먹고 놀았다. 그 누구보다도 외국문물을 빠르게 섭렵했고, 그 누구보다도 단시간에 신(新)문물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했다.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대한민국에서 그들의 생활양식은 혁명 그 자체였다. 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또 다른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을 막은 것은 정치인도, 언론도, 구태의연한 어른들도 아닌 경제위기였다. 갈팡질팡, 위태위태해 보이기도 했지만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던 문화적 역동성이 경제와 함께 얼어붙었다. 그들은 서서히 ‘386 세대’와 같은 역할로 사회 속에 자리잡아갔다. 학점, 토익, 어학연수, 취업준비…. 경제위기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적 역량을 모두 앗아갔다. 부모님이 애써 모은 돈을 낚아채 8mm 카메라를 사들고 영화를 찍던 아이들도, 폼 나는 기타를 어깨에 둘러메고 거리의 시인을 자처하던 아이들도 모두 집으로, 일터로 돌아갔다. 더 이상 거리에도, 대학에도 문화란 없었다. 민주화를 외치는 운동권 문화만이 잔존할 뿐이다.

10여년이  흘렀다. 다시 한번 새 시대가 열렸다. 부단한 노력으로 경제가 살아났고 인터넷을 등에 업은 새로운 ‘아이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90년대 아이들’에 못지않게 세상을 두드렸다. 인터넷 강국인 대한민국의 힘은 위대했다. 잠들었던 음반시장은 음원시장으로 대체됐고 잠들었던 창작열은 UCC가 되살렸다. 이들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한 나라의 모든 문화코드를 주도했고, 심지어는 대통령마저도 당선시켰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이미 선배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위기가 온단다. 처음에는 새로 당선된 대통령이 누리꾼을 못살게 굴더니, 설상가상으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도 닥쳤다. 심히 우려스럽다. 이번 ‘아이들’도 10년 전처럼 기가 죽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자신들의 문화적 역량을 포기하고 경제적 역량을 키우는 데에만 급급할 것만 같아 불안하다.

21세기의 새 불꽃은 예전처럼 사그라들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MB가 자꾸만 구박해도, 경제위기가 닥쳐도 세상은 그리 쉽게 망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우리가 가던 길을 계속 가자. 우린 한류열풍까지 만들어냈고 지금도 아시아에는 대한민국 젊은이를 흉내내려는 사람들이 무수하다. 이 시대를 이끌어 갈 문화적 역량을 스쳐 지나가는 경제위기 때문에 포기한다면 훗날 더 큰 가치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경제위기가 다가오자 우리를 떠났던 서태지. 이번에는 경제위기와 함께 컴백했다. 그는 과연 이 위기를 이겨내 줄 구원자가 될 것인가? 아니다.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길을 개척할 사람은 서태지가 아니다. 이 위기를 극복할 주인공은 바로 우리들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