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그들┃유인화 지음┃동아시아┃375쪽┃1만6천원

계집애가 무슨 학교냐는 조부모는 손녀가 승무옷을 입고 춤사위를 연습하는 장면을 보고 기겁했다. 그렇게 무일푼으로 쫓겨난 모녀는 삯바느질을 해가며 겨우 끼니를 연명했다. 손녀는 삶의 허기를 춤으로 대신 메워나갔다. 태명무 예능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된 강선영씨의 이야기다.

기생, 광대, 무당 등 묵묵히 우리 춤의 맥을 이어온 무용가들의 삶을 진솔하게 기록한 『춤과 그들』이 출간됐다. 춤이 좋아서 기생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무용가, 남북 이데올로기에 매여 긴 세월을 억눌려 지낸 무용가 등 삶의 질곡을 오직 춤으로 견뎌온 춤꾼들의 사연은 가지각색이다. 그들의 사연은 한국 근현대사를 되짚게 해준다.

“이 땅의 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소명으로 여긴다”고 말하는 저자는 원로 무용가들이 가슴속에 묻어놨던 기억을 그들의 입을 빌려 생생하게 들려준다. 시끄러운 과거를 묻어두고 살아야 했던 해어화(解語花) 춤꾼. 그 중 군산 최고의 예기였던 자신의 과거를 숨겨야 했던 ‘민살풀이춤’의 마지막 전승자 장금도씨는 행여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십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노인정에 가지 못한다. 하지만 여든이 지났어도 춤에 대한 그의 애정은 여전하다. 그에게 춤은 곧 운명인 것이다. “나중에 죽을망정 춤추는 순간이 좋응게. 춤을 간볼 때가 좋아”라고 말할 때는 열없는 웃음을 보이기까지 한다. ‘춤의 도인’은 춤사위를 고수하고 있고, 제자들을 지도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책은 화려한 명성을 뒤로하고 자신의 춤을 고집해온 춤꾼들의 증언에 주목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무용사의 한 자락을 펼쳐내고 있다. 저자는 “멀리 있는 옛날이 그리울수록 ‘과거로 돌아갈 순 없어도 돌아볼 순 있다’는 구절을 떠올린다”고 말한다. 책의 부제 또한 ‘우리 시대 마지막 춤꾼들을 기억하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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