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5월 아돌프 아이히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포된다.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재판에 참관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떠난다. 2년 뒤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600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은 상부의 명령에 복종한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라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내놓는다. “누구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논란에 휩싸였다.

같은 해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복종에 관한 행동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이 근간이 된 『권위에 대한 복종』이 지난달 20일 번역, 출간됐다. 그의 이론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정작 책은 원서가 출간된 지 35년 만에 한국에 소개됐다.

밀그램은 이 연구의 핵심적인 교훈이 “적대감 없이 자기 일을 수행하는 평범한 사람도 파괴적 과정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대리자적 지위’를 갖게 되면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심리적으로 도덕적 책임감을 무시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실험 결과는 아렌트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진행한 ‘복종 실험’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해치라는 명령에 상상 이상으로 복종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밀그램은 실험에서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전기충격을 가할 수 있는지를 측정했다. 대다수의 피험자들은 전문가들의 예측과 달리 끝까지 명령에 복종해 감전사를 일으킬 정도까지 처벌을 가했다. 밀그램의 실험은 로렌 슬레이터가 쓴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실험이 어떻게 설계되고, 어떤 변수들이 선택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곁들였다.

밀그램은 에필로그에서 “양심과 권위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딜레마는 사회의 본질 속에 내재하며, 나치 독일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딜레마는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사회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단 권위가 생기면 유사한 양상으로 복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밀그램의 이론은 그가 논문을 쓴 직후부터 책을 펴내기까지 10년의 시간동안 진행된 베트남 전쟁에서 실제로 입증된다. 밀그램은 베트남 전쟁 중 상관의 명령에 따라 민간인 370명을 죽였다고 밝힌 미군 병사와의 인터뷰를 책 끝머리에 싣고 있다.

책을 번역한 정태연 교수(중앙대 심리학과)는 “사회 구성원들은 복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양심에 따라 주체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고, 우리 사회는 이를 용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책의 의의를 설명했다. 출판사 에코리브로는 『권위에 대한 복종』을 시작으로 아직 번역되지 않은 심리학 고전들을 꾸준히 소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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