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
‘그들의 이야기’ 대변할 정치세력 전무
다문화 가정의 사회 정착 위해
사회 전반의 노력 필요

지금도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마주치면 놀라는 한국인이 있을까? 언제부턴가 한국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하지만 단순히 외국인을 마주치는 것과 달리 외국인과 나의 삶이 직접적으로 엮이는 일도 일상적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난 15일(일) 한 일간지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녀가 외국인과 결혼한다면?’이라는 질문에 20~30대의 18%, 40~50대의 24% 가량이 ‘절대 반대하겠다’고 답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수치지만 아직도 국민의 네다섯명 중 한명은 외국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강한 것이다. 아직 한국인들은 다문화사회라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것일까?

◇한국, 다문화 사회로 진입=1991년부터 2008년까지 17년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귀화인 58,053명, 국적회복자 25,659명으로 8만4천명에 이른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국적난민팀 이호수 계장은 “1990년대 초반에는 귀화인 수가 연간 수십명에 불과했으나 2000년대 이후로는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해 매년 수천명이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있다”며 “특히 최근 들어 그 수가 폭발적으로 급증해 2005년에는 1만2천명이 귀화했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1,158,866명에 달해 귀화인과 국내 체류 중인 외국인을 합산하면 대략 한국 인구의 2%를 웃도는 셈이다.

‘2%’라는 수치로 한국사회를 다문화사회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오가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한국이 다문화사회로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평택대 사회복지대학원 김범수 원장은 “다문화사회를 규정하는 객관적 기준은 없으나 일반적으로 외국인 인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사회를 다문화사회로 본다”며 “귀화인과 국내 외국인 체류자는 2%에 불과하지만 그와 연관된 사람들이 다문화가정의 영향을 받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사회와 다문화 현상을 분리해서 생각하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국내에서 운영되고 있는 다문화가정지원센터만해도 300여개에 이른다”며 “한국사회가 외국인을 위해 다문화가족지원법, 재한외국인지원법, 국적법, 결혼중개관리법을 제정한 것을 봐도 한국이 실질적으로 다문화사회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국 출신이면 누구든 정치참여 힘들어=한국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다양한 정치 세력은 나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18대 국회에 입성한 여성 의원은 총 41명으로 지난 17대 국회의 39명에 이어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장애인 의원은 8명으로 늘었다. 4명이었던 17대 국회와 비교하면 두 배 증가한 수치다. 그러나 똑같은 약자 계층임에도 외국 출신 귀화인이나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은 전무한 실정이다.

현재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는 외국인에게 일체의 피선거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국적을 취득했어도 외국 출신으로 한국 정치인이 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실제로 현재 국회의원 중 외국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이 비례대표 7번으로 필리핀 출신의 한국인 헤르난데스 주디스 알레그레씨를 공천했으나 국회 입성에는 실패했다. 이에 ‘한국외국인인권보호법률위원회’ 최경섭 위원장은 “외국인 비율이 2%라면 산술적으로 국회의원 299명 중 6명은 다문화가정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지방자치의회도 상황이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현재 서울지역 각 자치구의 외국인 비율은 영등포구(8.7%), 금천구(7.2%), 구로구(6.6%) 순으로 높다. 하지만 세 자치구의 구의원 22명 중 다문화가정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외국 출신자는 한명도 없다. 금천구의회 사무국의 임명수씨는 “그동안 외국 출신자가 의원 후보로 나선 것은 본 적이 없다”며 “이들이 의원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아직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외국 출신자가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기대하기 어렵다.

외국인이 간접적으로나마 정치에 참여하는 길도 만만치 않다. 외국인에게 적용되는 각종 규제들 때문이다. 일례로 외국인은 선거 유세 활동을 지원할 수 없다. 지난 18대 총선에서 평화통일가정당 조민기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던 한 일본인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배우자가 외국인일 경우 해당 후보자는 배우자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입후보자의 선거 유세를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은 해당 후보자와 배우자, 타인 1명 등 3명에게만 주어지는데, 이는 한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총선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하자 선관위 측은 “공직선거법 개정을 검토해보겠다”고 발표했으나 현재까지 개정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한데 어울리는 한국, 언제쯤 가능할까?=한국이 안정적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외국인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 김은주 소장은 “다문화가정의 욕구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들 자신”이라며 “이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정부가 각종 지원 정책을 펼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다문화교육센터 성상환 교수(독어교육과)도 “장기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 외국인들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인이 적극적인 정책마인드를 갖게하기 위해 한국 국적 취득자나 영주권자를 대상으로 공무원 특채를 실시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주 소장도 “이주민들과 직접 대화를 해보면 자신의 정치적 욕구보다는 이주민 후손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금은 다수의 국민들이 외국인의 정치 참여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조만간 한국사회가 다문화가정을 포용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김범수 원장은 “국내 외국인 인구가 급증한 것은 최근 4~5년 사이의 일”이라며 “정치적 리더를 양성하기에는 짧은 기간이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다문화지원센터 및 여러 대학이 나서 다문화가정의 사회 정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향후 이들 기관에서 외국인 출신 인재들이 배출되면 외국인의 정치참여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서울대는 다문화연구소를 설립해 다문화 가정의 학생들이 한국에 적응할 수 있도록 각종 교재를 개발, 연구하고 있으며 평택대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과 이들을 교육할 교사를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 각 시․도에서도 자체적으로 다문화교육센터를 설립해 전문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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