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별개의 영역처럼 보이는 ‘문학’과 ‘과학’이라는 정신활동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과학철학자였던 바슐라르는 과학사를 연구하는 동안 상상력의 중요성을 깨닫고 문학비평에 천착했다. 지난 6일(금) 번역, 출간된『비포 아담』은 과학적 상상력이 소설로 거듭난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저자인 잭 런던은 원시 인류의 생활을 상상하면서 인간성을 통찰하고 인간 사회를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유전물질이 생식세포를 통해 전달된다는 이론에서 영감을 얻은 런던은 “자신의 모든 기억을 자손의 대뇌조직에 새겨놓아 그 기억이 여러 세대를 흐를 수 있다”는 상상력을 펼친다. 소설 속 꼬마 미국인은 매일 밤 꿈속에서 ‘나무부족’의 일원인 ‘큰 이빨’이 된다. 대학에서 진화론을 배우면서 꿈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발견한 주인공은 그간의 꿈을 복기해 원시 인류의 삶을 들려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부족 중 가장 원시적인 부족의 일원인 ‘큰 이빨’은 의붓아버지 ‘수다쟁이’에게 쫓겨난 뒤 ‘동굴부족’의 서식처에 도착한다. 아내를 죽이는 극악무도한 우두머리인 ‘붉은 눈’에 반기를 들었다가 ‘늘어진 귀’와 함께 탈출한 그는 ‘재빠른 것’을 만나 사랑에 눈을 뜬다. 붉은 눈이 재빠른 것을 뺏으려는 소동이 마무리될 때쯤 활을 쏘고 불을 능숙하게 다루는 ‘불부족’이 서식처를 습격한다. 학살 속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큰 이빨과 재빠른 것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

런던은 약육강식의 세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그의 작품에 담아냈다. 『비포 아담』에서 고등 문명이 상대적으로 약한 문명의 구성원들을 학살하는 모습은 사회진화론을 앞세워 식민지를 확장해나가던 제국주의의 모습과 닮았다.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1904년에 조선을 방문하기도 한 저자는 불부족에게 당한 고통을 나무부족에게 되갚아주는 동굴부족의 모습을, 당시 일본의 모습에서 발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40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19편의 장편소설 등 수백 편의 작품을 쏟아낸 런던의 상상력은 그의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일찍 학교를 그만둔 그는 통조림 공장과 원양 어선을 전전했고 돈을 벌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나 골드러쉬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런던은 최하층 노동자에서 미국 문학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작가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역동적인 삶을 살았다.

『비포 아담』이 출간된 지 105년이 지났지만 그의 풍자는 여전히 유효하다. 선집의 기획자인 곽영미씨는 “약육강식의 현실이 단지 고도 자본주의라는 이름 하에 좀 더 세련된 모습만 보일 뿐 더 잔인하고 혹독해졌다”고 말한다. 강대국은 여전히 약소국을 경제적으로 착취하고 있고 신형 무기를 앞세운 전쟁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런던이 보여주는 인류의 어두운 자화상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까지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다. 인류는 아직도 ‘전-아담’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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