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사건 61주년을 맞아 지난 3일(금) 제주 시민단체와 유족들 2천여명이 제주 시청 앞에 모여 최근 여당의 제주4․3사건 관련 법안 개정과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을 저지하는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대한특별법(제주4․3특별법)’ 사수와 수구집단 망동 분쇄 범국민 대회를 열었다.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이 독립운동기념대회에 참가한 군중을 향해 발포한 사건에서 촉발됐다.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일선거․단일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남조선로동당 무장대가 봉기했고, 이후 7년간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이 희생됐다.

 

제주4․3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희생자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임에도 50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2000년에 와서야 제주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제주4․3진상보고서가 채택되면서 제주4․3사건은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인정된다. 또 참여정부 시절에는 국가원수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등 제주4․3사건의 해결 조짐이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재향군인회’, ‘재향경우회’, ‘제주4․3사건역사바로세우기대책위윈회’등 보수단체들이 “제주 4․3위원회가 조사해 희생자로 인정된 1만 3524명중 1540명은 남로당 세력에 가담했다”며 이승만 전 대통령과 국군의 명예 실추를 이유로 헌법소심판청구(헌법소원)를 냈다. 보수 성향의 국가정체성회복국민협의회(국정협)도 제주4․3위원회를 상대로 제주4․3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잇따라 청구하고 제주4․3위원회의 희생자 관련 결정을 무효화하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정협 김규 국장은 “진상보고서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기획단에 편성된 연구진들은 모두 좌파적 시각에 매몰된 민중사관의 역사를 서술했다”며 “잘못된 것을 법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바로 잡을 수 없기에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 권경석 의원 등 14명은 최근 위법한 행정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국무총리가 재심․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 등 행정위원회 근거법률 17개에 대한 일부개정법률안’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권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헌법의 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부정․적대시하는 반체제 혁명단체 관련자를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한 위원회의 위헌․탈법 결정에 아무런 견제 장치가 없다”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는 행위가 민주화 운동으로 포괄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제주4․3사건 관련 제주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제주4․3연구소는 성명을 통해 “제주4․3학살을 자행한 직접적 책임이 있는 당사자인 수구집단이 관련법 개정 발의를 하고 헌법소원을 하는 것은 제주4․3사건 희생자를 두번, 세번 죽이는 처사”라며 “제주도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해야 할 사람들이 적반하장으로 다시 한번 제주도민을 분열시키고, 무법천지 군사정권 시절의 잣대를 들이대며 희생자와 유족을 모독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들 또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제주4․3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현의합장묘4․3유족회’ 양봉천 회장은 “지난해 10월 제주4․3사건 시신 발굴 현장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감정이 북받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어 그는 “보수단체와 한나라당의 행태는 제주4․3사건 뿐만 아니라 모든 역사를 뒤엎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박철한 실장도 “일정기간 동안 진전돼 왔던 과거사 규명문제를 1970년대 상황으로 되돌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나 보수단체에서 주장하는 논리는 역사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이라며 정부여당과 보수단체의 행동에 유감을 표했다. 양정심 연구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소)도 “과거사 청산 의지가 없는 정부와 여당의 잘못된 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김인걸 교수(국사학과)는 “정치적 판단에 의한 속단을 해서는 안 된다”며 “한국 현대사의 전반과 마찬가지로 제주4․3사건 역시 민족적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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