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당신은 대학생입니까?
둘째, 그렇다면 당신은 저항합니까?

학생운동이 대학내 활동의 중심이었던 과거에는, 대학생 상(像)이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현재 대학생은 많이 달라졌다. ‘비권’을 표방하는 총학생회가 당선되는 현재 학내 분위기는 소위 ‘운동권’에 대한 요즘 학생들의 생각을 얼마간 반영한다. 사회 분위기와 정치 현실의 변화도 대학생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1960년 4[]19부터 2008년 5월 촛불시위까지 학생들이 참여한 시위가 모두 같은 양상을 띄는 것은 아니다. 그 변화의 원인을 단지 학생층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구조와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현재 학생들에게 있어 억압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반드시 학생운동 또는 시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학생운동은 큰 의미를 지녀온 것이 사실이며 그 영향력도 컸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칼럼니스트 김규항은 그의 책 『나는 왜 불온한가』에서, “억압과 싸우는 사람에게 성찰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찰’이 없는 저항은  발전을 이끌 수 없다. 낳지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학생들이 억압에 맞서 싸워온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학생운동을 되짚어 보면서 각 시대의 대학생이 저항해 온 과거를 성찰해 보고자 한다.

1960년 4월 19일 시위에 나선 의대생들, 시청

1960년 4월 19일 제2저지선의 서울대생들, 종로2가

1971년 문리대 휴업공고 사진, 10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군을 문리대, 법대, 상대에 진주시킨 뒤 다음날부터 휴업을 명했다.

1973년 10월 11일 문리대, 상대, 법대의 교내시위와 관련된 학생들의 징계공고문.

1975년 10월 15일 문리대 교정으로 진주해 오는 무장군인들

1988년 5월 광주학살의 진상을 밝힐 것과 남북통일을 외치며 명동성당에서 할복 후 투신자살을 한 조성만 열사의 추모식이 아크로에서 열렸다.

1988년 5월 11일 인문대 해방터에서 벌어진 단대마당에서, 학생들이 군사정부로 폭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던 당시 전두환 정부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1984년 9월~10월은 ‘서울대 학원프락치사건’이 벌어졌던 해다. 이 사건으로 정부의 학원사찰 중지를 요구하는 학내 시위가 이어졌다. 사진은 이러한 시위 때 사용된 최루액을 방독면을 쓰고 씻어내는 청소부들의 모습이다.

1986년 수배와 구속의 생활을 무릅쓰고 총학생회장 선거유세를 하는 입후보자를 말리는 어느 어머니의 모습

1992년 민자당 해체와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제1차 국민대회에서 길에 풍자화를 그리고 있는 여성.

1992년에 열린 미인대회 폐지집회. 1990년대의 다양해진 학생운동을 보여준다.


1960년대-학생운동의 시작

1960년대를 연 4[]19는 학생운동의 실질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전에는 관제 시위의 동원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학생층이 스스로 결집해 독재정권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의 시초가 됐고, 학생층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는 학생층의 사회적 발언권을 강화하고, 학생층의 자존감을 심어 준 선례가 됐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로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 추진된 한일 협정에 반발해 학생층은 반대투쟁을 전개했다. 이 시기의 학생운동은 민족주의를 기조로 한 것이 특징이다. 1965년 박 정권이 한일협정을 체결하자 이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은 더욱 격화됐고 끊임 없는 시위와 단식투쟁이 이어졌다.

1970년대-반유신, 노학연대

폭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1970년대 학생운동은 노동운동과 반유신운동으로 그 명맥을 이어갔다. 전태일의 분신 자살을 계기로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 등의 노동 현실이 밝혀지자 학생들은 근로조건 개선 등을 내걸고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또 1972년 10월 박 정권이 10월유신을 선포하자 학생층은 반유신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1970년대의 학생운동은 폭압적 권력 하에서 끈질기게 이어져갔다. 학생중심으로 구성돼 운동 성과는 적었으나, 야당의 민주화운동이나 1979년 부마항쟁 등에 힘을 실어, 유신체제 몰락을 앞당긴 계기로 작용했다. 1970년대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학생운동’의 전통적인 담론과 이미지를 형성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학생운동의 전성기

1980년대는 학생운동의 전성기였다. ‘운동엘리트’가 형성됐고, 대학가에는 ‘운동문화’가 주류 담론으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의 학생운동에서는 노동운동과 더불어 반미자주통일운동이 활발이 이뤄졌다. 학생운동가들은 노동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노동운동을 선도했고, 이런 노력들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등을 유발시키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됐다. 한편 1980년대 학생운동의 체계화는 사회적으로 학생층을 강력한 정치권력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 성공했지만 학생운동의 경직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거대 제도세력이 된 학생운동층이 위기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1990년대 들어 1980년대 운동에 대한 반성이 시작됐다.

1990년대-변화의 필요

1990년대 학생운동은 기존의 사회운동 세력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지 못한다. 이는 우선 노동[]빈민[]농민운동 등의 부문별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학생층이 운동 현장에서 설 수 있는 자리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또 1980년대 이후로 운동엘리트가 경직되면서 변화하는 상황에 재빨리 대응하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거시적 원인으로는 대학생 계층이 다원화되자 학생층 내부의 목소리도 다양해졌던 것을 꼽을 수 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고, 외환위기 사태로 인해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학생운동의 지향점도 바뀌었다. 반제국주의, 민주화를 기조로 해왔던 기존의 학생운동과는 달리 환경, 인권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양한 사회모순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남아 있던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1980년대에는 주류였던 학생운동의 그림자 안에서 막막함을 느꼈을 뿐더러 앞으로의 운동 방향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워했다.

2000년대-새로운 ‘운동’은?

2000년대 학생들의 앞에는 새로운 억압이 등장했다. 과거에는 독재, 군사정부와 같은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투쟁대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대학생이 독립해서 뜻대로 살기 어려운 사회 상황부터 진로와  관련된 갈등까지 개인에게 다가오는 억압과 모순이 다층적이다.

모순이 복잡해지면 해답도 복잡해진다. 현재 대학생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각 개인에 따라, 또 그 개인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르다. 하나의 이상적인 길을 제시하기보다는 그 다름을 인정하고, 각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부터 차근차근 ‘저항’을 시작해 나가야 한다. 군사정권이 붕괴했다고 해서 억압과 모순이 사라진 것이 아니다. 더 복잡해진 모순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어떤 대학생인가? 우리 스스로가 대학생으로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억압은 무엇인가? 우리는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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