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
  • 대학신문
  • 승인 2009.05.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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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 편견과 독선의 치료제, 『수상록』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프랑스 문학에서 세 사람의 대가를 이야기하라면 흔히 마르셀 프루스트, 빅토르 위고와 함께 몽테뉴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저서 『수상록』은 서양인들이 ‘머리맡에 두고 읽는 책’ 1순위에 든다고 하는데, 어디를 펴서 읽어도 좋고 우리 삶과 밀착된 편안한 이야기라 부담스럽지 않으며 읽다보면 점점 그 깊이에 빠지면서 어느덧 잠이 오는 모양이다. 사회당 당수로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의 집무실에 몽테뉴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거나, 몽테뉴를 탐독했던 니체가 “이런 사람이 있어 삶이 견딜만한 것이 된다”고 했던 것을 보면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작가의 글이 가진 호소력은 현대인에게도 여전해 보인다.

늦깎이로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나에게 지도교수였던 고(故) 김현 선생님이 권해주셨던 책이 바로 『수상록』이었다. 그 중에서도 「식인종」과 「역마차」라는 두 개의 장에서 이야기되는 ‘신대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써보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손우성 선생의 번역본을 곁에 두고 있으면서도 몽테뉴의 16세기 프랑스어 문장은 난삽하게만 느껴졌지만, 그래도 400여년 전 작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의 글이 흥미로워서 공부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운운하는 이즈음 이야기들의 요체가 이미 거기 들어 있었던 것인데, 신대륙 원주민 사회를 야만으로 규정하고 파괴와 살육을 일삼은 유럽문명에 대해, 유럽이야말로 야만이며 ‘식인’의 사회 아닌가 묻고 있는 그 글의 억제된 분노와 진정성이 오랫동안 마음에 울렸다. 10여년 전 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인류학을 청강하던 한국인 의사가 내게 몽테뉴를 아느냐고 물어서 당신이야말로 어떻게 그를 아는가 물었더니, 첫 수업에서 읽는 텍스트가 바로 몽테뉴라고 해 다시금 이 르네상스인의 ‘포스’를 느낀 적이 있다.

몽테뉴 수상록

지구에 남은 최후의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수상록』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이 책 역시 30년 이상의 긴 내전으로 분열과 반목이 휩쓸던 시대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 하느님을 둔 신교와 구교가 서로를 악마의 사주를 받은 집단으로 규정하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운 당시 프랑스의 상황은 이데올로기의 이름으로 참혹한 동족상잔을 겪은 우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사실은 사익을 추구하고, 그 기회를 틈타 자기 내면의 잔인함을 한껏 풀어놓는 무뢰배들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수상록』의 몽테뉴가 극도로 싫어한 것은 잔인함과 폭력 그리고 편견이었다고 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내 정의가 세상의 정의라고 믿는 독선이 잔인함과 결합하면 내가 휘두르는 폭력마저 미화되니, 가스통을 가지고 다니며 설치는 것이 다 국민을 위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들이 하늘의 일을 두고 확신에 차서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 기가 막혔던지, 그는 “내가 무엇을 아는가?(Que sais-je?)”라는 말을 자신의 경구로 삼았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진술마저 단정적이라며 피하려는 이 경구의 정신으로, 자신과 세상, 역사와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가늠하고 따져본(essayer)’ 성찰의 궤적이 바로 『수상록(Essais)』인 것이다.

서문에서 몽테뉴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그리는 자신의 모습은 서양문화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것이었다. 자신의 공적 행적을 세상에 증언한다거나 종교적 목적으로 신 앞에 자기 삶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나날의 삶 속의 구체적인 나 - 프로이트가 보면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의 이야기를 포함한 - 의 온갖 모습이 더 없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몽테뉴가 이런 것을 소중한 진실로 여겼던 것은 자신을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의 허영과 오만에 김을 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이들 사소한 진실에 대한 성찰은 당대 사회, 역사, 교육, 자연, 문화, 종교, 법, 군사, 경제 등 요컨대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한 사유와 연결되면서 『수상록』을 ‘교양인의 필독서’로 만들었다.

그의 독특한 매력은 세상에서 물러나 사색하는 사람이면서도 세상으로 나아가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식 나이로 40이 되던 1571년, 오스만 터키와의 결전인 레판토 해전을 앞두고 온 유럽의 귀족들이 이교도와의 전쟁에 열광하며 말을 타고 달려 나갈 때, 그는 오랜 법관직을 사임하고 한 마리 말에 의지해 터벅터벅 자기만의 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집단의 광기에 거리를 두는 이 ‘홀로 가는 자’는 자기 뜻과 무관하게 보르도 시장으로 2번 연속 선출된 공명정대하고 유능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내전 중에 양쪽 모두의 신뢰를 받는 유능한 중재자였으면서도, 내전이 종식된 뒤에는 국왕 앙리4세의 부름을 사양하고 자기 성에 고요히 머물러 있었다. 시장 몽테뉴는 ‘잠시 세상에 자기를 빌려준 것일 뿐, 자기를 양도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으니, 고금의 출세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불가사의한 말일 것이다.

인간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의식하고 있는 현실주의자가 쓴 ‘세계문학사상 가장 개인적인 책’은 자유사상가들과 계몽주의자들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한 연원이 된다. 우리가 고양이를 데리고 놀고 있을 때, 고양이 역시 자기가 사람을 데리고 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라고 묻거나, 사냥개들에 쫓겨 막다른 궁지에 몰린 사슴이 돌아서서 호소하듯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무슨 권리로 이 무구한 생명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인지 아프게 돌아보는 몽테뉴는 우리 안의 갖가지 편견을 건드리는 사람이며 그의 『수상록』은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이다. 소르본 대학 입구의 몽테뉴 동상은 시험 보러 들어가는 학생들이 부적인 양 한 번씩 만지는 바람에 오른발이 닳아 있다고 한다. 지혜를 찾는 자에게 틀림없이 효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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