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과 수도서비스의 민영화 추진 등 현 정부의 공공서비스 정책에 대한 논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집단 간 갈등은 자기 주장만을 앞세운 정치싸움으로 치달아 결국 타협과 합의가 이뤄질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독일 사회민주주의 진영이 정부와 협상과 타협을 통해 사회보장체계를 이룩해나간 과정은 오늘날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박근갑 교수(한림대 사학과)의 『복지국가 만들기』가 노동절을 맞아 지난달 30일 출간됐다. 박근갑 교수는 「독일 사민당의 신중도와 참여경제의 미로」 등의 논문을 저술했으며 지난 30여 년 동안 독일 사회민주주의를 주제로 연구해왔다. 독일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나 폭력을 동반한 혁명보다는 민주적 방법으로 사회개혁을 달성하려 했다. 이같은 독일 사회민주주의 진영의 태도는 비스마르크 정부와 사회보장제도를 두고 갈등을 벌이다 토론과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한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저자는 “비스마르크와 사회민주주의 진영 간 대립과 타협을 통해 근대적 사회보장제도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법’을 시행했으나 노동자들의 반발이 계속 이어지자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해 이를 무마하려 했다. 사회주의자법의 목적은 노동자 집회를 원천봉쇄하는 등 사회민주주의를 해체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에 적대적이었던 비스마르크는 기업과 노동자를 ‘국가의 중추’로 여겨 그들을 사회민주주의에서 격리하려 했다.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제도는 국가가 국민의 복지를 전적으로 책임지는데, 이는 당시 인식으로는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문에 이 법안은 의회와 고위 관료들의 반대로 대폭 수정된다. 이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정부에 대한 노동자들의 거센 반감을 이용해 비스마르크 정부에 반격을 시도한다.
초기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사회보장제도를 ‘정치적 사기’로 규정해 비스마르크 정부와 논의하기를 거부했으나 이후 적극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사회민주주의 진영이 태도를 바꾼 이유에 대해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복지제도는 ‘하나의 모태’에서 비롯된 탓에 사회민주주의진영이 복지제도를 외면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이를 계기로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제도권 정당으로 발돋움하고 점차 국민 복지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자리 매김한다.

저자는 복지제도를 둘러싼 치열한 정치적 갈등이 결국에는 “독일 협상정치의 기틀을 마련하고, 먼 미래에 다가올 협상정치의 싹을 틔웠다”는 평가를 내린다. 라이벌의 의견이라도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면 수긍하는 것, 그것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사회민주주의가 지금 한국의 정치세력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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