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의 쿤밍으로 공정여행에 참가한 여행자들이 현지 소수민 장터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
사진: 국제민주연대 제공


지난 여름 이재훈씨(21)는 푸켓으로 52만원짜리 3박 4일 패키지여행을 떠났다. 첫날 한국인 가이드가 동행한 가운데 이씨는 동물원에서 코끼리 쇼와 트래킹을 즐겼다. 특급호텔에서 먹은 점심메뉴는 갈비찜 정식이었다. 일정을 마친 이씨는 태국인 마사지사를 불러 싼 가격에 오일마사지를 즐겼다. 이재훈씨는 “음식도 입에 맞고 가격도 싸서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많은 한국인들이 여행사가 준비한 여행 패키지 상품을 통해 이 같이 편안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여행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나의 즐거움을 위해 자연과 사람을 파괴하는 여행 대신 주민들과 친구가 되고 배우고 나누며 성장하는 여행을 하고자 한다.




여행, 그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

여행이 지역 발전에 기여한다는 통념과 달리 관광산업은 현지인들에게 큰 수익이 되지 않는다. 케냐의 야생지역 관광수입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관광수입의 40%는 항공사에, 20%는 관광회사에, 23%는 다국적 호텔 체인점에, 8%는 사파리에 나머지 9%는 정부에게 돌아간다. 여행 작가 최정규씨는 말레이시아의 사례를 지적한다. 그는 “관광객이 이용할 골프장 하나를 건설하면 지하수는 물론 인근 지역의 농업용수와 식수까지 모두 소모하기 때문에 인근 지역 농민 100여 가구는 그 지역을 떠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역 사회의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고 현지민의 경제구조에 기여할 수 있는 ‘건강한 여행’은 없을까?

이에 대한 해답으로 제시된 것이 ‘공정여행(Fair Travel)’이다. 공정여행은 현지의 문화, 환경에 대한 여행자들의 윤리적 의무를 중시한다. 공정여행에 관한 본격적 논의는 1988년 각국의 뜻있는 인권 단체들이 모여 국제 NGO ‘글로벌 익스체인지’를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여행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생태적 여행 △윤리적 여행을 모토로 내걸어 북한, 콜롬비아, 아일랜드 등 세계 60여 곳의 교육시설을 지원하고 귀국 후 대중들에게 현지인들의 삶을 소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최근에는 미국의 쿠바 경제제재에 맞서 쿠바 국경을 넘는 여행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골프여행 및 매춘관광 반대운동을 펼치는 영국 시민단체 ‘투어리즘 콘선(Tourism Concern)’이나 공정여행 전문여행사 ‘리스펀서블 트래블닷컴(Responsible travle.com)’ 등 공정여행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정여행 바람 부는 한국

국내에서는 최근 들어 몇몇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공정여행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민주연대, 이매진피스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초 국제민주연대는 국내 최초로 공정여행을 기획해 중국 윈난의 성도인 쿤밍을 방문했다. 공정여행단은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항공 이동을 자제하고 현지 모습을 잘 볼 수 있는 버스를 선택했다. 항공기로 금세 닿을 거리를 매일 4~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했지만 윈난의 절경을 온몸으로 체험힌 값진 기회를 얻었다. 또 이들은 숙소와 식당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팁을 건넨다. 작은 팁문화는 그들의 경제 생활에 충분히 활력을 줄 수 있으며 그들의 서비스에 대한 격려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일반 패키지 여행객이 묵는 호텔이 아닌 소수민족 마을의 객잔에서 머물며 소수민족들의 주거와 음식 문화를 체험했다(왼쪽아래사진). 밤에는 바이족, 나시족 등 고유한 언어와 풍속을 가진 소수민족들의 노래 솜씨에 감탄했고 낮에는 흙먼지 날리는 재래시장에서 쇼핑과 군것질을 즐길 수 있었다.

여행을 기획한 김경씨는 “우리나라 여행의 80% 이상이 한국음식점이나 유명 쇼핑몰을 이용하는 패키지여행으로 현지 경제와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은 극히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또 참가자인 김한실씨(연세대 법학과?4)는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라는 느낌으로 현지 문화를 접할 수 있었다”며 “요즘은 함께 여행했던 사람들이 모여 공정여행을 다녀온 지역에 지원 활동도 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이매진피스의 이혜영 대표는 공정여행 전도사다. 지난달 21일 인권연대 교육장에서 ‘공정한 여행은 가능할까’라는 주제로 열린 강연회에서 이씨는 “우리나라는 약 40여 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여행 역사를 가지고 있다”며 “그만큼 여행에 대한 자성은 외국에 비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정여행을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현지인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공정여행에 관한 지침과 그간 활동 에피소드를 담은 그의 가이드북 『희망을 여행하라』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공정여행 어떻게 참여하나요?

국제민주연대는 7월 중순에 중국 윈난을 한 번 더 방문한다. 8월 중순에는 차마 고도에서 출발해 티베트로 가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세한 일정은 6월 중 국제민주연대 홈페이지(www.khis.or.kr )를 통해 공지된다.

직접 공정여행을 기획하고 홍보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아시안 브릿지(www. asianbridge.com)를 방문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시안 브릿지는 크게 ‘SMART’(Social Marketer for Asia's Responsible Travel)팀과 ‘ASSA-V팀(AsianBridgeSteppingStones   Association-Volunteer)팀으로 나뉘는데   이 중 SMART팀은 공정여행 코스 개발, 홍포, 이벤트 제작 및 가이드북을 발간한다.

공정여행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모여 서로 경험을 공유하던 중 탄생한 ‘공정여행축제’도 눈길을 끈다. 축제에 참여했던 정효민씨는 “여성, 생태, 아시아 등 주제별로 강연회도 열리고 여행에서 사온 기념품으로 바자회도 열린다”며 “공정여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행사 기획 및 일정은 공정여행 카페(cafe.naver.com/fairtravel)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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