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노무현’의 정치적 진정성
현실 정치 뛰어넘지는 못해
그가 꿈꿨던 ‘페어플레이’ 세상
‘페어’의 정신이라도 지켜지길

최민석
사회학과 석사과정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다. 한편에는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전가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의 죽음을 정치적 동원의 계기로 삼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다. 뉴스 앵커의 말처럼 모두 “이번 사태의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망자에 대한 도리를 묻기 전에 정치인의 정치적 죽음에 대해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의 삶과 죽음에는 정치적 당파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는 살아서 정치적 병폐들에 도전했고, 죽음으로 그것이 진실이었음을 알렸다.

그를 정치로 이끌었던 가치들은 한때 시대정신으로서의 힘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기로에 설 때마다 그는 정치적 결단으로 돌파해 나갔고 그만큼 그의 꿈은 현실성을 얻어가는 듯했다. 부산에서의 잇단 출마와 낙선으로 그는 ‘바보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정치자산을 얻었고, 정몽준과의 도박적 단일화로 대통령이 됐으며, 탄핵위협에 굴하지 않음으로써 열린우리당을 의회 제1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죽음으로써 이 모든 시도가 종국적으로 실패했음을 알렸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한 마지막 결단이었다. 살아서는 다시는 그가 꿈꿔온 가치가 진실이었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친인척과 측근들이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이유로 현재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었다. 대중은 그를 그가 인생을 걸고 지양하려 했던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로 취급했다. 그의 일생은 어느덧 난센스가 돼버린 것이다.

그는 한때 정치적 정당성과 도덕성의 상징 그 자체였다. 고질적인 문제들에 순수한 자세로 도전하는 ‘진정성’이 민심을 움직였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문제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복합적이고 어려웠다. 그것은 그가 뛰어든 정치 구도 속에서는 도무지 해결될 수 없었다. 지역주의가 무엇으로 타파되겠는가? 영남에서 민주당이 당선되고 호남에서 한나라당이 당선되면 되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정치적 페어플레이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겠는가? 대연정을 하면 되는가? 조중동이 안 팔리면 되는가?

문제의식의 정당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과 그에 대비된 수단의 빈곤은 결국 그를 퇴락시켰다. 그는 ‘진정성’으로 정치 지형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그가 취한 프레임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 스스로가 상징이 됐던 가치와 열망을 놓아줄 수도 없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도덕률로도 용납할 수 없었고, 정치적으로도 불가능했다.

그가 품었던 꿈은 ‘페어플레이’의 세상이다. 물론 그가 말한 ‘페어’는 자유주의적 한계를 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은 작금의 정치 프레임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현재 정치적 지반 위에서는 그동안 성취한 형식적 민주주의조차 쉽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건 또 다른 노무현이 앞으로 수 백명 등장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죽음으로서 자신이 갇혀 있던 정치 프레임의 유효성이 다했음을 알렸다. 그러나 그가 지향했던 보편성의 무게로 인해 그의 삶과 죽음의 의미는 휘발되지 않고 낮고 넓게 침윤하고 있다. 그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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