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함께 숨쉬는 사람

▲ © 노신욱 기자
지난 3일(수), 기자는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5층 단행본 자료실로 향했다. 30년째 중앙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선실 사서와 함께할 ‘일일 사서 체험’을 위해서다. 책을 빌리러 갈 때와는 다른 기대감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오전 9시, 공익근무요원들과 함께 반납대에서 올라온 책을 정리하는 사서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사서들은 오전 9시, 오후1시, 3시에 반납대에서 하루 3번씩 올라오는 책을 정리해 서가에 배열하고 파손본을 분류해낸다. 틈틈이 부재도서를 확인하기도 하고, 하루 평균 100여 권 씩 들어오는 새 책에 바코드를 붙이기도 한다.

사서의 주된 업무는 아무래도 학생들이 책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서가를 정리하는 것이다. 약 73만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단행본 자료실은 4개의 서고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서고를 한 명의 사서가 책임진다. 부족한 일손은 공익근무요원과 봉사장학생으로 채우고 있다. 서고 하나를 돌아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세 시간 정도. 쉴 틈 없이 서가를 돌아다녀야 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저는 주말마다 관악산을 올라요. 이 정도 일은 거뜬해요”라고 말하는 이 사서 의 표정에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정리를 끝냈는데도 여전히 가배열대 위에 놓여있는 책이 있다. 파손본이다. “이렇게 칼로 잘려진 책을 보면 안타까워요. 같은 책이 여러 권 있을 때는 복사해서 제본하지만 같은 책이 없을 경우에는 정말 난감해요.” 한 두 장이 낙장된 경우도 있었지만, 반 이상이 사라져버린 책도 있었다. 칼로 잘려져 나간 책은 대부분이 미술 관련 책자다.

다른 서가에 책을 꽂아두고 오다가, 이미 정리가 끝난 서가에 책이 아무렇게나 놓여진 것을 발견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럴 때는 정리를 해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화나 날 듯도 했다. 이 사서는 “책을 제 자리에 꽂아두기 싫을 땐 그냥 빈 서가에 놓고 가는 것이 제일 좋아요”라고 말한다. 잘못된 위치에 꽂아두고 갈 경우, 그 책은 인터넷 검색창에는 ‘대출 가능’으로 표시돼 있지만 서가에서는 찾을 수 없는 ‘부재도서’가 되기 때문이다.

부재도서를 확인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1:1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날도 상당수의 학생들이 부재도서 확인을 요청했다. 이 사서는 “숫자 1을 영어 소문자 l로 보거나, 숫자 0과 영어 대문자 O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니 서지번호를 잘 확인해야 해요”라며 “책의 크기나 두께를 알면 책을 찾을 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상세서지정보에 나와 있는 책의 크기나 페이지 수를 적어가면 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날은 이 사서가 단행본 자료실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6층의 고문헌 자료실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주위 사람들은 고생 많이 했다고 하는데, 책과 함께 숨쉰다는 생각에 저는 제 일이 너무 좋아요”라고 말하며 웃어 보인다. 그 만큼 좋아하기 때문에 동숭캠퍼스 시절부터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 © 노신욱 기자
헤어질 시간이 되자, 이 사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형광펜으로 줄이 잔뜩 그어져 있고, 펜으로 글씨까지 써있는 책을 보여줬다. “이렇게 지저분한 책이 꽤 많아요. 이건 수리로도 해결할 수 없거든요. 다른 사람이 보기 안 좋으니 서로 조금씩 깨끗하게 썼으면 좋겠어요” 대학의 도서관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가 보인다는데 앞으로 도서관과 책을 좀 더 소중하게 이용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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