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로 무장한 공포영화가 올해도 연이어 개봉됐다. 단지 20분 정도 앉아있었을 뿐인데 어느 타이밍에 누가 죽을지 누가 범인이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런 식상한 오싹함에는 이제 질렸다고? 그렇다면 다양한 소재와 기괴한 상상력이 넘치는 공포만화를 접해보면 어떨까.

공포만화의 전설, 이토준지

‘공포만화’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가 있다. 일본 공포만화계의 거장 이토 준지다. 국내 최초로 공포만화라는 장르를 선보였던 99년작 『소용돌이』에 이어 지난해 이토 준지의 단편작을 모은 『공포박물관』이 총 10권으로 출간됐다. 그는 일상의 공포적 요소를 잘 포착해내기로 유명하다. 인간의 신체부위와 관련된 일상적인 소재를 ‘결벽증’, ‘욕망’, ‘저주’ 등의 인간의 추악한 감정과 연관시켰다. 달팽이를 싫어하는 소녀의 혀가 민달팽이로 바뀌는 「달팽이 소녀」나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년이 일기에 타인을 저주하는 내용을 쓰면 그것이 실현되는 「쇼이치의 즐거운 일기」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작품은 『공포박물관』이라는 제목이 말하듯 온갖 공포를 총망라했지만 기묘하게도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눈앞에서 펼쳐지는 극한의 공포를 겪어야만 하는 만화 속 인물,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독자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공포박물관』만의 매력이다.

범인은 당신 옆에 있다!

‘학교 옥상에서 떨어져 죽은 전교 1등의 귀신이 땅에 머리를 쿵쿵쿵 박으며 자신을 난간 밖으로 민 전교 2등을 찾아 밤마다 헤맨다’는 투의 귀신이야기는 이제 시시하지 않은가? 강경옥의 『두 사람이다』에서 공포는 가족, 친구 등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기인한다. 주인공 ‘지나’의 먼 조상은 집안에 재앙을 가져오는 이무기를 죽인다. 승천을 하루 앞뒀던 이무기는 “너희들에게도 죽음의 공포를 맛보게 해 주겠다”며 저주를 남긴다. 이후 이무기의 저주대로 집안에는 매 세대마다 한명씩 죽어나간다. 한 가지 더 밝혀지는 사실은 살인을 유도하는 조력자가 역시 근처에 숨어있다는 것. 이렇게 죽음의 저주를 시행하는 자는 두 사람이다. 이 재앙은 급기야 주인공 ‘지나’에게도 일어나게 된다. 하루는 엄마가 칼을 휘두르고, 하루는 사촌인 ‘명현’이 목을 조른다. 시시각각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그들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지나’의 공포는 극에 달한다. 누가 적이고 누가 동지인지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심리적 압박이야 말로 공포의 도가니다. 괴물이나 귀신처럼 ‘악’을 자처하는 인물은 없지만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필사적으로 오가는 추론은 오싹하다. 적의 실마리를 한 꺼풀씩 벗겨나갈 때마다 살인마의 숨소리는 더 가까워진다.

저주받은 신부 이반 아이작의 방랑

사막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 안. 두목 ‘에스터’를 구하기 위해 갱단 ‘맥라이더’의 단원들은 두목을 수송 중인 기차를 습격한다. 우연히 기차 화물칸에는 악마 ‘테모라제’에 의해 괴물로 변한 사람들이 결박돼 있었다. 습격당한 자의 신선한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하는 괴물들. 이윽고 그들은 결박을 끊고 튀어나와 승객과 갱단 전원을 덮친다. 두목을 살리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단원들과 그들이 무참히 살육되는 비극 속에서 ‘에스터’는 울부짖는다. 인육을 질겅질겅 씹으며 그를 향해 괴물들이 다가오는 찰나, 기괴한 분위기의 신부 ‘이반 아이작’이 은제 탄환과 단검을 들고 ‘테모라제’의 창조물을 향해 달려든다. 형민우 작가의 『프리스트』는 신부 ‘이반 아이작’이 자신의 호기심 때문에 풀려난 악마 ‘테모라제’에게 복수하는 과정을 그렸다. 악마 ‘테모라제’의 저주로 괴물로 변한 애인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했던 ‘이반 아이작’의 고통은 뚝뚝 끊어지는 거친 필체와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긴박한 화면구도와 어우러져 공포를 넘어선 아련함까지 자아낸다. 일반적으로 선과 악은 대립하지만 『프리스트』에서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선과 악, 피해자와 가해자가 전복되는 혼란 속에 ‘테모라제’와 ‘이반 아이작’ 모두 신을 향해 동일한 의문과 분노를 품고 있다. ‘신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 존재한다면 왜 나의 고통을 방관하는가. 현재  『프리스트』는 한국만화로서는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촬영 중이다. 만화는 아직 연재 중이며 현재 16권까지 나왔다. 저주받은 신부 ‘이반 아이작’의 방랑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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