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의 분노와 희망을 대변하는 시사만화
그리고 그 속에 숨은 ‘진짜 이야기’

올해는 한국 만화가 100주년을 맞는 해다. 한국 만화의 시초가 만평인 만큼 한국만화 100주년은 동시에 시사만화(만평) 100주년이기도 하다. 그간 한국의 만평은 독재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민의 아픔을 대변해주면서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매번 시사적 ‘핫이슈’를 다루며 세간의 주목을 끄는 만평. 지금 여기서 만평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의미를 파헤쳐 본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등 짧은 시간 동안 비교적 많은 역사적 부침을 겪어왔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의 만평은 다른 나라보다 유독 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이 강하게 묻어나온다. 만화 신문 사이트 코카 뉴스 김진수 편집장은 “한국 만평에 정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절대적으로 많은 까닭은 역사적 경험 때문”이라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재 권력은 자신에 대한 비판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검열을 통과하기 위해서 간접 풍자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만평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일제 강점기, 일제에 의해 강력한 탄압을 받던 언론은 지배 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담은 저항적인 기사를 실을 수 없었다. 이에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에 실린 대한민국 첫 만평은 탄압에 대한 해방구 역할을 했다.

만평가들은 비판의 대상을 모호하게 하거나 비꼬는 만화를 그렸고 민중들은 그 숨은 의도를 파악하면서 일제 탄압의 서러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한민보」의 1909년 7월 25일자 만평(그림①)은 그 좋은 예다. 한 남자가 도끼로 나무를 찍고 있고 나무에는 ‘임이완용(任爾頑傭) 자부상피(自斧傷皮)’가 새겨져 있다. 그대로 뜻풀이하면 ‘재주가 없는 품팔이 일꾼에게 일을 맡겼더니 자기 도끼에 상처만 입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중들을 포복절도하게 한 것은 이 만평의 숨겨진 ‘진짜 이야기’에 있다. 당시 장안에는 매국노 이완용이 며느리와 정을 통하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고 이를 한자로 하면 자부상피(子婦相避)가 된다. 자부(子婦)는 며느리, 상피(相避)는 근친상간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한글 발음만 같고 의미는 다른 자부상피(自斧傷皮)라고 씀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은닉하고 대상을 조롱했다.

계속해서 간접 풍자로 권력을 조롱한 「대한민보」의 만평은 일제 당국의 극심한 탄압과 검열로 1910년 8월 31자로 폐간되기 전까지 항일 투쟁에 앞장섰으며 그 이후에는 동아일보 등의 신문사 만평이 주축이 돼 투쟁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림 1. 「대한민보」 만평
             
1909년 7월 25일자


◇만평가들의 목숨을 건 용기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지배 권력의 통제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른바 군사정권의 도래. 왜곡된 언론 보도 사이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만평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김성환의 ‘고바우영감’(「동아일보」), 김경언의 ‘두꺼비’(「경향신문」), 김기율의 ‘도토리’(「서울신문」), 신동현의 ‘주태백’(「연합신문」) 등 4칸 연재만화의 등장으로, 만평은 서민층의 대변자로 부각될 수 있었고 대리 만족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군사정권에 맞서기 위해선 만평가들의 상당한 용기와 신념이 필요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 만평 탄압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고바우 영감’(1958년 1월 23일자)(그림②). 현재의 청와대 격인 경무대에 근무하는 사람은 심지어 ‘똥을 치는’사람도 ‘권력’이 있다는 내용을 다룬 것으로 이 때문에 김성환 작가가 유죄판결을 받고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박정희 정권 때는 그 탄압이 더욱 강력해져 국가재건최고회의 포고 11호를 공포함에 따라 신문사들이 강제 정리됐고 이는 만평 수의 감소로 이어졌다. 또 언론보도에 대한 철저한 검열과 제약도 계속됐다. ‘고바우영감’의 김성환 작가는 계속된 정권 비판으로 두 번이나 투옥됐고 1967년 8월부터 「서울신문」에 ‘까투리 여사’를 연재한 윤영옥 화백은 1972년 6월 19일자(그림③) 만화에서 정부농업정책(새마을 운동)을 비판한 것이 문제가 돼 회사를 떠남과 동시에 만화 연재도 중단됐다.

전두환 정권 때는 언론 통폐합 조치를 시행해 사전 검열과 언론인 강제 해직 등 언론탄압의 극치를 보여줬다. 하지만 만평가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정권에 저항했다. 전두환 정권에 대한 비판적 만화를 자주 선보였던 ‘두꺼비’(「한국일보」)의 안의섭 작가는 1986년 1월 19일자(그림④)에 전두환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연행되고 연재가 중단되는 고초를 겪었다. 만평가들의 저항은 계속됐고 1987년 ‘6월 항쟁’이후 등장한 노태우 정권은 “대통령 얼굴을 시사만화에 풍자해 그려도 좋다”고는 했지만 실체는 여전히 군사정권이었기 때문에 풍자표현이 자유롭진 못했다.

그림 2. 고바우영감(「동아일보」)
            
1958년 1월 23일자, 김성환

그림 3. 까투리여사(「서울신문」)
            
1972년 6월 19일자, 윤영옥

그림 4. 두꺼비(「한국일보」)
             
1986년 1월 19일자, 안의섭

◇각양각색(各樣各色) 만평시대

언론을 표면적으로 탄압하는 실체가 없어 평온할 것 같은 현대 만평의 세계는 이제 다른 문제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예전과 달리 권력의 종류가 정치, 자본, 종교 등으로 세분화 돼  판의 대상이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각 신문사의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만평의 색깔이 뚜렷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16일, 신병률 교수(경성대 신문방송학과)는 참여정부 기간에 분석한 ‘조선만평’에 관한 논문 발표에서 “전 노무현 대통령이 부정적으로 묘사된 경우가 97.9%(457개)였으며, 긍정적으로 묘사된 경우는 없었고, 모호하게 묘사된 경우가 2.1%(10개)”라며 “또 노 전 대통령을 미숙하고(50.4%) 부당하고(39.4%) 모순된(10.2%) 인물로 묘사하는가 하면, 성마르고(38.8%) 소심하고(28.6%) 경박한(24.5%) 인물로 풍자하는 등 노 전 대통령을 능력과 성격 면에서 모두 결함이 있는 인물로 그려냈다”고 덧붙였다. 이에 고경일 교수(상명대 애니메이션과)는 “근래 우리 언론은 공정한 잣대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단 정파적 이해에 따라 배제, 축소, 과장, 왜곡을 불사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진수 편집장은 “용산참사 사건만 봐도 ‘조선만평’은 철거민들의 항쟁을 불법적인 것으로 묘사(그림⑤)한 반면 한겨레 만평에선(그림⑥) 이명박 대통령을 친위대에 빗대어 독재자로 표현하는 등 정파적 입장이 분명하게 나타난다”며 “특히 「조선일보」 신경무 화백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사람들로부터 조선일보사의 보수적 시각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상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조선일보」 만평 시각에 동조하는 보수적 성향의 시민들은 진보 성향의 만평에 대해 비판을 가해 시시비비를 가리기 힘든 팽팽한 접전을 방불케 했다.

이에 한겨레 만평가로 활동했던 박재동 교수(한국종합예술대 영상원)는 “신문사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만평의 성격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공격의 수위와 표현방법이 너무 극단적인 점이 문제”라며 “그 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뿐 아직까지 대안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스사회학자 터크만(Tuchman)의 ‘뉴스 속 현실은 선택과 배제, 강조와 축소를 통해 구성된 현실이기 때문에 뉴스는 객관적일 수 없고 우리는 뉴스가 틀 지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주장이 상식이 된 오늘날. 지금이야말로 만평 독자들에겐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할 때가 아닐까.

그림 5. 「조선일보」 2009년 1월 21일자, 신경무


그림 6. 「한겨레」 2009년 1월 21일자, 장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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