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편안 진단

여론조사 결과 국민 60% 개헌에 찬성
이원정부제,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논의
권력 분산, 국민의 뜻 수렴에 초점

1987년 6·10 민주항쟁 이후 22년, 개헌은 이뤄질 것인가. 최근 정치권에서는 대통령제, 기본권, 지방자치 등 전방위적 개헌 논의가 한창 뜨겁다. 논란의 중심에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려는 권력구조개편안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대통령제를 개헌하려는 움직임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로 대통령 집권 때마다 개헌논의는 숨 가쁘게 진행돼 왔다. 그러나 매번 대통령제 개헌은 대통령 개인 혹은 집권 정당의 야욕으로만 비쳐 극렬한 대립의 진원지가 되곤 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사회 각계의 비판이 이어지며 개헌 논의 필요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현재 진행 중인 개헌논의를 통해 한국의 현 대통령제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1948년 이승만 정권 이후 1960년 장면내각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 대통령제를 유지해왔다. 지금까지 9차에 걸친 개헌 결과 1987년 제정된 현행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 5년 단임제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마지막 개헌으로부터 20여년이 지난 2009년의 대한민국에 개헌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흔들리는 5년단임 대통령제

지난 7월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공동으로 전국의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현행 대통령제의 인식 상황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42.6%가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개헌을 지지하고 38.1%가 5년 단임제의 유지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대통령제를 유지하자는 데 80.7%가 찬성했지만 임기와 중임 여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그렇지 않은 의견에 비해 4%가량 우세했다. 반면 대통령과 총리의 임무를 분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국회 다수당이 국정을 책임지는 의원내각제에 대한 지지는 총 16.4%로 상대적으로 지지가 미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헌을 원하는 국민이 60% 가량 차지하는 점을 볼 때 대한민국의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권력구조 개편의 필요성

현재 개헌논의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집중 현상을 야기하는 제도적 장치나 5년 단임제를 수정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다. 대통령에게 국정 지도자로서의 국정조정권, 헌법기관구성권, 법률안 제출·거부권 등을 부여하는 현행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 칭할 만큼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하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취임 3개월 만에 ‘퇴진’ 구호가 나온 이명박 대통령을 볼 때 국민통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과도한 권력집중제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최근 노무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결말을 볼 때 권력 주변의 부패, 전임 권력에 대한 후임 권력의 정치 보복 또는 과도한 과거청산 진행은 대통령에 집중되는 권력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소 지혜용 연구원은 “바람직한 정치를 위해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예외 없이 발생하는 각종 비리 등 사법처리 문제로 국민들이 존경할 만한 대통령이 나오기 힘든 것이 한국 정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5년 단임제의 현행 대통령제는 무리한 정책 추진과 조기 레임덕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중론이다. 1987년 헌법은 당시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반영돼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포함했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혁 면에서는 긍정적 평가를 받지만 5년 단임제에서 논란의 여지를 보인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소 김병권 부원장은 “5년 단임제는 중임이 불가능해 계획 중이거나 시행 중인 사업이 있어도 백지화 돼 정책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며 “대통령이 집권기간 내 가시적인 성과 마련을 위해 과도하게 권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통령 권한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결여돼 권력의 정당성을 평가받기 힘들다. 진보정치연구소 김장민 상임연구위원은 “현행 헌법은 1987년 8인 정치회담에서 급조됐다”며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와 함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대선주자의 이해관계가 5년 단임 대통령제로 귀결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대통령직선제는 국민적 요구가 반영됐지만 5년 단임제는 대선 등 정치 일정에 쫓겨 충분한 논의 없이 제정됐다”고 말했다.

◇진행되는 개헌 논의

지난달 31일 국회의장 직속 자문 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헌자위)는 개헌 문제에 대한 1년 동안의 연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헌자위는 이원정부제를 제1안으로,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제2안으로 제시했다. 헌자위가 제시한 제1안은 오스트리아의 이원정부제에 가깝다. 헌자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원정부제는 5년 단임 직선제로 대통령을, 국회에서 재적 과반수로 총리를 선출한다. 총리가 국정 전반의 통할권뿐만 아니라 국가, 외교 분야에도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다. 또 총리는 내각 구성권은 물론이고 국군통수권과 국가긴급권인 긴급재정경제명령권까지 갖게 된다. 전학선 교수(한국외대 법학과)는 “이원정부제는 평상시에 있어서는 의원내각제적으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에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립에서 오는 마찰을 피할 수 있으며, 국가의 위기에 있어서는 대통령이 직접 통치함으로써 신속하고도 안정된 국정처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개헌안인4년 중임 정·부통령제는 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한 것이 핵심이다. 이와 함께 대통령에게로의 권력 집중을 방지하기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일정부분 넘긴다. 대통령의 임시국회 소집요구권, 정부의 법률안 제출권을 폐지하는 동시에 예산법률주의 도입, 국회의 대법원장·헌재소장·재판관 전원선출권 등을 부여해 대통령의 권한을 일정부분 국회로 넘긴다. 4년 중임제 하에 부통령은 대통령 궐위·사고 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이러한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이 차기 선거를 의식해 각계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게 될 뿐만 아니라 조기 레임덕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성낙인 교수(법학과)는 “미국식 대통령제에 수정 조항을 입힌 5년 단임제의 한국의 대통령제는 과거 대내외적 특수상황으로 인한 차선책이었다”며 4년 중임 대통령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병권 부원장도 “4년 중임제는 사회 각계의 공감을 형성했다”며 “대통령이 실현 가능한 공약을 내세우고 정치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4년 중임제 도입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대통령과 나란히 행정부의 2대 수반이라 불리는 부통령은 대통령이 임기 중 불가피한 이유로 대통령이 공석일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제헌헌법이 제정된 시기인 1948년 부통령제를 도입한 바 있다. 정·부통령 러닝메이트제는 합의된 의사결정을 효율적으로 도출해내고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킬 수 있다. 그러나 정·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보면 부통령은 헌법적인 권한이 미미해 직위 자체에 대한 논란이 있다.

◇개헌 논의, 시기상조?

활발한 개헌움직임이 일고 있음에도 일각에서는 개헌 논의가 현실 상황을 외면한 의제 설정이라고 비판한다. 한국 의회 정치의 후진성을 고려할 때 개헌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다. 여야가 모여 의견을 합의해 도출해내기도 쉽지 않은 상태에서 개헌 논의가 어떻게 진전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 1일(화) 정기 국회 개회식에서는 민주당이 미디어법 반대를 명분으로 국회를 퇴장하는 불미스러운 사태가 발생했다. 각 정당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들로 구성된 헌자위에는 아직 민주당 추천 전문가는 포함되지 않은 상태며 생산적인 논의를 진행할 분위기 조성도 미약해 보인다. 하지만 정기 국회 개회와 함께 대통령제 개헌 논의는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다. 헌자위에 소속된 이창기 교수(대전대 행정학과)는 “이번 헌자위는 각 정당에서 추천한 법조계 인사들이 정당 색깔 없이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해 사심 없이 이번 헌법 개정안을 도출했다”며 “국회에서 여야의 대립으로 순조로운 개헌 논의 진행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그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모두 공감하고 있다”며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립이 해결되고 대통령의 유화정책까지 포함된다면 원활하게 개헌이 진행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개헌 논의 진전에 있어 여야 모두의 동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국회의장의 결단이다. 이준일 교수(고려대 법학과)는 “국회의장의 개헌 의지가 확고하다”며 “실제로 5년 단임이나 대통령의 독선 등 헌법상 권력구조안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제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논의 상황이 충분히 성숙했다고 본다”며 “개헌을 둘러싼 각종 이해관계의 대립이 예상되지만 개헌은 실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7년 이후로 5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 대통령제 실시 이후 제도상의 문제점이 속출해 매 대통령마다 개헌 논의가 진행됐지만 항상 무산되고 말았다. 2009년 가을의 개헌 논의가 정치권 공방으로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 이념에 걸맞게 국민의 뜻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진행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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