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평론가 오스카 와일드는 비평을 하나의 독자적 예술과 창조의 결과물로 봤다. 영화비평 역시 하나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영화인문학』과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그 영화의 비밀』(부메랑 인터뷰)은 인문학자와 영화전문기자가 각기 다른 거리감을 가지고 다가가 ‘예술로서의 비평’의 가능성을 연다.

『영화인문학』의 저자인 철학자 김영민 교수(숙명여대)에게 영화비평은 대중의 취향을 버르집고 따져 이치들의 맥을 잡고 구조와 체계를 유형화하려는 노력이다. 이를 통해 그는 분과체제의 인문학이 지적 ‘허영’에 빠져 가치가 퇴색해 가는 동안 영화라는 ‘세속적’ 매체와 소통해 새로운 인문학의 미래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 책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에서부터 시작해 「바보들의 행진」(1975)까지 총 스물일곱 편의 영화를 다룬다. 저자는 최신작부터 오래된 걸작까지 총망라하면서 인간의 이치와 그 삶의 패턴으로 구성되는 인문(人紋), 즉 ‘인간의 무늬’를 짚어낸다. 저자는 「밀양」에서 신애(전도연 분)가 용서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에서 자신을 영웅시, 초인화하고 자신을 비극의 무대에 세우는 나르시시즘의 왜곡된 상을 발견한다. 그는 「바보들의 행진」에서는 1970년대 철학과 대학생이 바보가 돼 고래를 찾아나서는 모습에서 시대의 허무와 현실의 암담함을 읽어내기도 한다.

작가만의 독특한 문체와 어휘는 처음 책장을 넘기는 독자들에게 이질감과 난해함을 안겨준다. 하지만 독자의 이런 불평을 덜어줄 장치가 책 뒤편에 마련돼 있다.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개념어에 대한 해설과 순 우리말 풀이는 작가의 독특한 시각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된다.

『영화인문학』이 영화를 통해 인문학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면 『부메랑 인터뷰』는 창의적인 인터뷰 형식을 빌려 영화와 감독의 비밀스런 이야기에 접근한다. 책의 저자인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영화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영화 속 대사를 감독에게 부메랑처럼 되돌려준다. ‘밥은 먹고 다니냐?’며 봉준호 감독의 스케줄을 묻는 식이다. 저자는 감독의 모든 전작을 세세히 분석하고 감독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감독의 숨겨진 성향 등을 고백하게 만들기도 한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대사에서 유독 ‘책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함을 지적하면서 그의 작품이 책임에 짓눌린 장남의 딜레마를 품고 있는 ‘장남의 영화’임을 분석하여 감독 스스로 늘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힘든 점이 많았다는 내면의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식이다. 유하 감독은 음성 서클로 대변되는 남성성에 대한 강박을 느꼈던 학창시절의 트라우마를 「말죽거리 잔혹사」를 만들며 ‘살풀이’를 한 덕택에 더 이상 고교 시절의 꿈을 꾸지 않게 됐다고 말한다.

서문에서 저자는 평균 10시간이 넘는 마라톤 인터뷰를 진행하고 방대한 인터뷰 기록을 정리하는 작업이 ‘고단한 순례’와 같았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를 위해 2주에 걸쳐 감독의 전작을 모두 섭렵하고 대사를 일일이 받아 적느라 영화 한편을 보는 데 대여섯 시간을 쓰기도 했다. 시간의 ‘질’보다 ‘양’을 신뢰하는 그는 『부메랑 인터뷰』가 단순한 인터뷰 기록이 아닌 ‘한국영화에 대한 연애편지’이자 ‘길고 긴 대화를 통해 구성한 감독론’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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