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김종영 미술관: 「각도인서(刻道人書)-조각가 김종영의 서화」전


동양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전신사조(傳神寫照)’를 꼽았다. 전신사조는 초상화를 그릴 때 인물의 형상재현에 그치지 않고 그 사람의 ‘정신’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의미다. 특히 조선시대 초상화의 대표작 윤두서의 「자화상」은 터럭 하나에도 그의 내면이 느껴질 정도로 동양에서는 정신적인 내면세계를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글씨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서예에서도 ‘전신사조’는 가능할까.

다음달 8일(목)까지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에서 열리는 「각도인서(刻道人書)-조각가 김종영의 서화」은 작가의 사상과 내면정신을 붓글씨로 표현한 자화상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현대미술에 최초로 추상조각을 도입한 조각가로 더 알려진 김종영 선생의 서예가로서의 면모를 볼 기회다.

그의 예술관은 ‘유(有)는 무(無)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노장사상과 통한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의 조각처럼 서예 작품에서도 형식과 규범 대신 글씨가 가진 본래의 자유로움이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김종영 선생의 글씨는 인위적 장식을 배제한 ‘무’에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유’를 창출한다. 특히 형식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했던 그의 성향은 동양적인 자연관과 자연미를 노래한 시들을 선호했던 그의 취향과 맞물려 더욱더 흥취를 불러일으킨다.


뉘라서 한산에 오리. 한산의 길은 끝 모르는 길. (…중략) 바람 없어도 솔 소리는 이는 것. 뉘라서 이 세상 번거로움 떠나 흰 구름 그 속에 나와 함께 놀랴.

작품①은 중국 당나라 때 여구윤이 한산(寒山)의 작품을 모은 책에 실린 「한산도」의 내용이다. 세상을 유유자적하며 자연을 벗 삼아 노니는 정취와 그림을 그린 듯한 조형적 글씨가 시의 풍류적인 멋에 한껏 취하게 한다. 김정락 학예실장은 그의 서체에 대해 “주먹으로 붓을 잡고 쓰는 필법인 악필로 자유롭게 노는 느낌의 필체를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어느 것 하나도 한 사람이 썼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 다른 느낌의 서체를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한편 김종영 선생은 대학이나 중용, 그리고 논어 등의 구절을 서예로 쓰면서 자신의 인생을 반성하고 성찰하고자 했다.


만이불일(滿而不溢) 소이장수부야(所以長守富也) 고이불위(高而不危) 소이장수귀야(所以長守貴也)(작품②)

유교경전인 효경(孝經)의 제 3장 제후장(諸侯章)에 나오는 이 문구는 과한 것을 경계하고 항상 중용의 자세를 유지하려는 그의 인생관이기도 했다. 특히 이 작품은 붓에 먹을 흠뻑 묻혀 굵은 글씨로 강직하고 힘 있게 써나가 곧게 살고자 한 그의 의지가 묻어난다.

조각이 인위적으로 만든 조각 같지 않게 그저 그 자체로서 천연스럽게 보이길 원했던 김종영 선생에게 있어 서예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는 서예에서 꾸미지 않아도 그 자체로서 완성되는 순수한 멋의 그 무엇을 보았으리라. 그리고 그 발견으로 인한 표현의 산물들 또한 지금 천연덕스럽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보는 이들과 마주하려 한다.

<문의: 김정락 학예실장 (016-245-9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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