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모토와 모르쇠 일관
‘실천가능’ 선본 MB 정부와 닮아
‘침묵’이란 값싼 선택의 교훈
싼 값은 양질을 기대하기 어려워

벌써 1년이 훌쩍 지났다. 이래저래 이야기가 나오나 싶더니 뜨거웠던 지난해 6월의 아우성은 이제 국민의 기억 속에서도 모두 지워진 듯하다.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수입할 것”이라는 MB의 발언에 분노하던 사람들은 종로 거리로 촛불을 들고 쏟아져 나왔다. 그 이후로 MB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렇게 비난 받는 MB도 처음에는 유래없이 놀랄만한 지지율로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철썩 같이 믿었던 서민들의 마음이 모여 48.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17대 대선은 어느 대선보다도 싱겁게 끝이 났다. 역대 대선 투표율 중 최저치를 기록했던 대선이었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2007년 11월 서울대에 등장한 ‘실천가능’도 그런 선본이었다. 대통령도 실용을 외치는 마당에 총학생회(총학)라고 못 할 것도 없었다. 총학 선거에 후보자가 나와 ‘공약 실천’을 공약으로 내건 모습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까웠지만 그동안 나왔던 선본들의 정치 싸움에 지친 학생들은 ‘실천 가능’한 공약을 내세운 그들을 지지했다. 여느 총학 선거와 다르지 않게 연장투표를 거쳐서야 겨우 투표가 완료됐지만 선거가 무산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같은 이름을 내건 선본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두의 예상대로 ‘실천가능’은 그 전보다 더 높은 지지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두 번째 ‘실천가능’이 당선되고 난 후에도 모두가 기대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복지’와 ‘의견수렴’을 최고 기치로 삼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것은 그 무엇도 아니었다. 당선 직후 터진 식권 위조 사태에서 시작된 불신은 시국선언 당시 미적지근한 태도와 이후 계속된 실책으로 더욱 불타오르게 됐다. ‘식권가능’, ‘식권게이트’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누군가는 ‘총학생회 사퇴’를 부르짖기도 했다. 단지 총학 간부가 연루됐을 뿐인데 과한 반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무렵 총학 쇄신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깔끔한 사과와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 대신에 “집행부 인선을 위한 좋은 방안을 이야기 해달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한때 스누라이프에서 박진혁 총학생회장을 두고 ‘이명박진혁’이라고 비꼬아 말하는 것을 보고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쩐지 닮아있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조금은 미안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최저투표율을 기록한 대선과 투표율 50%를 겨우 넘은 총학 선거가 닮았고, ‘중도실용’이라는 애매한 가치를 내세운 MB정부와 ‘실용’이라는 모호한 모토를 가진 총학의 빈약한 철학이 닮았다. 각종 논란을 불러일으키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MB와 식권 사태를 계기로 ‘집행부 인선’을 쇄신안으로 생각하는 총학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 그 모순을 말하는 MB의 모습에서 총학 선거의 모순도 읽어낼 수 있었다. 싼값으로 좋은 질을 기대하는 건 이기적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값싼 선택이 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는 ‘침묵’이 될 것이다. 그 ‘침묵’이라는 가장 ‘값싼 선택’을 한 우리에게는 ‘질 좋은 복지’를 기대할 자격이 없다.

실천가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도전할지, 다른 이름과 모토를 내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실천가능’에서 다음 총학 선거 후보가 다시 한 번 나올 것이라는 사실은 유력해 보인다. 그간 ‘실천가능’의 전통을 미뤄 짐작해 보면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떤 사람이 나올지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국민의 참담함과 서울대생의 그것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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