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란 교수
사회복지학과
학생들로부터 수업 중에 혹은 면담 중에 개인적인 삶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어제 수업에서도 아동 체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한 학생은 내가 집에서 자녀들을 체벌하는지 궁금해 했다. 대학원 수업에서 가부장제에 대해 논의할 때 학생들은 내가 집에서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을 남편과 어떻게 분담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결혼하고 공부하는 여자 대학원생은 전문직을 가진 여성으로서 둘째 자녀를 가지는 게 현실적으로 바람직할지 묻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나는 학생들에게 모델링이 될 수 있는 모범적인 답을 제시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일하는 많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일과 가족을 위해 좀 더 헌신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은 걱정하지 말고 늦더라도 학교 일을 다 하고 오라시던 어머니께서 요즘은 내가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저녁에 늦는지 몇 번을 물으신다. 기억력도 기력도 점점 떨어지시는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보살펴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마음 한 구석에 늘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들이 학교에서 귀가하는 시간은 요일마다 학년마다 다르고, 일주일에 하루는 오후 한 시면 집으로 돌아온다. 방과후 엄마의 지도감독이 없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지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다짐을 거듭 받지만, 이제는 유혹의 원천을 제거하기 위해 아예 키보드를 들고 출근한다. 아이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을 위한 정보와 자원이 턱 없이 부족하니 자녀들의 학업 교육이 점점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교수로서 원 없이 연구하고 원 없이 논문을 쓰고 싶지만,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런 생활을 해오면서 나는 일과 가족 이외의 삶을 최대한 단순화 해오고 있고, 이제는 정서적으로 지지 받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학생들은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인생 선배로서 명쾌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가 거듭되면서 이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이 일과 가족을 양립하는 것이 실제로 얼마나 힘든지 절실히 알기 때문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섣불리 조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여성 교수의 개인적인 삶에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요즘 내가 하는 답은 거의 선문답에 가깝다. 때로는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지 나도 모르겠다’고 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본질을 생각해보고,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정말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고 답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존재이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재능과 잠재가능성을 계발하고 실현하기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고리타분한 이야기 같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살라’는 말을 하면, 그래도 많은 학생들이 공감의 눈길을 보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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