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난민 인정절차로 인해 난민 인정자 적어
관련법 개정과 전문부서 필요… 인권차원에서 접근해야

난민은 자신의 생명과 권리, 신념을 부당한 박해로부터 지키기 위해 조국을 떠나온 사람들이다.  한국에는 현재까지 총 2,336건의 난민신청이 있었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한국정부는 이들이 안전한 보호를 제공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국내의 난민인정심사는 제도가 미비하고 전문성과 공정성이 떨어지는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또 난민의 권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이가 드물고 난민에 대한 지원과 처우는 미약한 실정이다. 이에 『대학신문』은 한국의 난민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어떤 개선책이 있는지 알아봤다.

삽화: 유다예 기자 dada@snu.kr
1992년 한국은 ‘난민의 지위에 대한 협약’(난민협약)에 가입했다. 난민협약 제1조는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특정 사회단체 참여 등의 이유로 박해의 공포를 피해 조국을 떠난 후 귀환하지 못하거나 귀환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고 밝힌다. 위 협약은 모든 국가가 난민문제의 사회적, 인도적 성격을 인식하고 이 문제가 국가 간 긴장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하며 난민보호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의 인색한 난민 인정 실태

한국에서는 난민협약 이후 2009년 6월 기준으로 총 2,336명이 난민신청을 했고 심사대기 중인 사람이 781명이며 심사를 받은 사람 중 116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2001년  최초로 난민의 지위가 인정된 이래 2003년 이후 난민 신청자 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난민 인정자 수는 매년 10여명 안팎에 머물렀고 2008년에는 36명이 난민지위를 획득했다. 또 법무부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끝에 법원에 의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현재까지 총 16명으로 난민 불인정을 받은 993명 중 122명이 이의신청 중이다. 

난민 신청자 총수, 난민 인정절차 진행 상황, 난민 인정비율 등 난민과 관련된 각종 통계는 한국 난민 인정의 법제와 관행에 결함이 있음을 드러낸다. 난민인권센터 김성인 사무국장은 “법무부의 난민심사 절차와 태도를 보면 난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보다 난민 인정자 수를 통제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며 “해가 갈수록 법원에 의한 난민 인정자가 늘어나는 것은 충분히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는데도  그동안 법무부에 의해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무부는 난민 인정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와 잘못된 인식을 가져왔으며 인권문제인 난민 인정심사에 정치적인 고려를 일삼았다”며 “심사에 필요한 전문성과 담당 인력역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난민 인정절차의 문제점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출입국관리사무소와 외국인보호소에 난민 인정 신청서 접수 △출입국관리 공무원의 면담 △난민담당 공무원의 사실조사 및 심사 △결정 및 통지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난민신청이 불허되면 이의신청과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제2조 2호의 2는 난민의 정의와 인정요건을 난민협약 제1조의 해석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는 난민개념의 공식적인 국문 번역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그 범위가 협소한 상황이라 난민의 개념과 요건을 명확하게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 외에 끝도 없는 심사 소요 기간 역시 심각한 문제다. 난민심사가 종료된 총 588명 중 47명은 4년 후에야 걸려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심지어 1차 심사에 이의를 신청해 법원 판결을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8년이 소요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난민 인정절차의 단계별, 전체적 기간의 제한이 없어 난민 인정절차가 지나치게 장기화돼도 제한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난민지위 인정에 소요되는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난민심사 가운데 난민지위 인정까지 2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30%를 넘는다.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07년 8월 한국의 정부보고서에 대한 견해에서 “난민신청에 대한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절차기간이  장기화돼 ‘난민협약’이 발효된 이후에도 제한된 수의 난민 신청자들만이 난민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난민과 난민 신청자에 대한 한국법은 ‘난민협약’ 및 국제적으로 승인된 기준들에 따라 검토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접근성이 문제되고 있다. 인권위원회 차별시정본부 이주인권팀 문은현 사무관은 “난민 신청인들이 난민 신청절차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경로는 대부분 친구나 지인으로 입국 시 공항 등에서 정보를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난민 신청인들이 난민 인정절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절차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통역인의 부족 역시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또다른 요인이다. 면담 시 난민 신청인의 진술은 난민 인정에 서 가장 중요한 증거로  원활한 의사소통과 진술의 신뢰성을 위해 정확한 통역은 필수적이다. 한국은 면담 시 출입국관리소 측에서 통역을 제공하지만, 난민 신청자 대부분이 비영어권 출신인데 반해 가능한 언어의 종류가 극히 제한적이다.

한편 난민인정협의회의 운영과 역할, 특히 전문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 4월 29일 개최된 난민인정협의회는 2시간 동안 이의신청자 114명을 심사해 112명을 기각시키고 2명에 대한 결정을 연기시켰다. 이는 1명을 심사하는데 1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소요한 것을 의미한다. 국제엠네스티 이정주 사무관은 “난민인정협의회 운영이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고 있다”며 “지난 6월 20일 새로운 난민관련 법령의 시행을 앞두고 난민신청자를 줄이기 위해 난민인정심사가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열약한 난민 복지지원

이처럼 난민 인정 자체에 많은 문제가 있는 가운데 난민 신청자들은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도, 정부로부터 생계지원을 받을 수도 없어서 심각한 생계 위협을 받고있다. 지난 6월 출입국관리법이 개정돼 난민신청이 1년 이상 지난 난민 신청자들은 취업허가를 신청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법은 2010년 6월부터 발효돼 당장 생계가 걱정되는 난민 신청자는 여전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미성년자와 고령자, 질병 및 장애를 겪어 노동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최저 생계비 지원이나 직업 교육 등은 전무한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법무부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고 있지 않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의 ‘2008 국내난민 등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난민과 난민 신청자의 35% 이상이 의료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밝혀진 ‘2007, 2008년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예산 중 난민의료비 집행내역’에 따르면 매년 난민 신청자와 체류외국인을 위한 의료비로 책정된 11,250만원중 2007년에는 8%, 2008년에는 20%만 사용됐다. 배정된 예산 집행마저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등 법무부가 난민과 난민 신청자들의 실제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난민보호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제도조차 현실적이지 못하는 등 사회적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성인 사무국장은 “난민에게 취업자격은 부여 되지만 막상 취업 할 수 있는 구직정보 제공이나 교육 등이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빈번하다”며 “난민으로 인정된 후 주거비나 생계비용 등 경제적 지원이 없어 사회적 안전망이 매우 취약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법적 권리와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안내,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언어와 문화교육이 전무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난민 신청자는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장치가 전무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난민 신청자는 난민신청 후 1년이 지나거나 법무부 장관이 인정한 경우에 한해 취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의 권리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보장된 바가 없고 특히 의료보험이 제공되지 않아 질병, 출산, 사고를 당하면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난민 담당 부서와 근거법 정비 필요

이 같은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난민의 개념과 요건을 명확하게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법상 난민규정은 몇 개의 규정이 출입국관리법의 일부로 규정돼 있다. 국제난민지원단체 피난처의 이호택 연구원은 “한국의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 2와 4는 각각 난민인정의 신청과 이의신청에 관한 규정만 둬 난민 인정절차와 관련해 난민의 개념및 요건과 입증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문은현 사무관은 “ 출입국관리법과 별도로  난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인권보호라는 관점에서 난민문제에 접근할 수 있으며 법률체계상 출입국관리법에서 다룰 수 없는 난민의 기본적 지위 및 사회적 처우에 관한 적절한 규정을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5월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은 난민 인정절차 및 난민처우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자는 ‘난민등의지위및처우에관한법률’ 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황우여 의원은 “출입국관리법의 몇 개 조문만으로는 국제 인권법상 보장되는 난민의 인정절차와 사회적 처우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다”며 “입법목적이 명백히 구별되므로 출입국관리법과 독립된 입법으로 난민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인권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난민문제를 담당할 전문부서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에서 난민문제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국적난민과에서 총괄한다. 불법체류외국인을 적발해 처벌하고 추방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출입국관리국 체류심사과에서 난민업무를 담당하다 비판여론에 부딪혀 2006년 법무부 직제개편으로 국적난민과가 신설된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2006년 발표한 ‘국내외국인난민의 인권실태조사’보고서에서 “난민문제는 출입국과 체류의 문제일 뿐 아니라 노동이나 복지 등의 처우 문제를 포함한 전체적 인권보호의 문제”라며 “전문성을 갖춘 난민담당공무원이 인권관련부서에서 담당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난민문제를 인권보호 차원이 아닌 출입국관리 차원으로 인식하는 정부의 의식 개선이다. 피난처 김재원 간사는 “아직 난민 문제를 우리와 동등한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난민의 존재를 한국사회의 짐으로 바라보는 의식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난민협약에 따르면 난민은 인정을 통해 그 지위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난민이기에  인정돼야만 하는 것이다. 난민 제도의 개선과 그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한국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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