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공간을 잠식하는
실용주의적 인식 우려
온고지신의 학문 정신으로
충분한 숙고 뒤 개발하길

최종현
외교학과 석사과정
올가을로 석사 입학 후 다섯 번째 학기를 맞이한다. 학부도 같은 학교를 나왔으니 관악에 터전을 둔 지는 10년이 다 돼간다. 20대의 대부분을 함께한 곳이니 정이 들었을 법한데, 마음속을 살펴보면 애정의 강도가 생각보다 약해 스스로도 조금은 의아하다. 이유를 따져보니 그동안 계속돼 온 캠퍼스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인 듯싶다.

입학한 이래 학교는 외적으로 계속 변모해왔다. 내가 다니는 사회대 주변만 봐도 그 사이 83동과 16-A동이 생겼고, 지난여름에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건물이 준공됐으며 현재 사회대 정문 주차장 부지에는 세 번째 신양관이 건설 중이다. 규장각 증축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건물을 새로 짓는 일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 기간의 절반은 두 명씩 자리를 나눠 써가며 연구실 생활을 했기 때문에 남 못지않게 공간 부족을 체험했고, 이같은 상황이 건물을 일부나마 새로 짓지 않고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도 알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시설들이 기존 건물, 그리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서울대만의 고유한 분위기가 충분히 쌓이지 못하고 계속 그 흐름이 끊어진다는 점이다. 사회대 근처는 전부터 현대식 건물, 기와 건물, 고대 그리스 양식의 건물이 어색하게 서로 얼굴 맞대고 있었는데 83동과 로스쿨 건물은 이러한 부조화를 증대시켰다. 사회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학교 곳곳에 들어선 유리 건물들은 인문대·자연대·공대의 적벽돌 건물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외따로 존재한다. 서울대의 풍경은 이처럼 애정을 두기 어렵게 단절적으로 변화해왔다. 

새 건물들은 또 나의 쉼터를 상당수 잠식했다. 규장각 잔디밭은 이제 순환도로에 근접한 부분만 남아 친구들과 햇볕을 쬐거나 혼자 책을 읽기 어렵게 됐다. 사회대 뒤편의 그늘진 벤치는 16-A동에 자리를 내주고 밑으로 내려갔는데 오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환풍기가 옆에 있어 오래 머물기 어렵다. 그리고 사회대에서 인문대를 오고 갈 때 예전에는 멀리 내다보며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면 이제는 한쪽으로는 83동이, 또 다른 한쪽으로는 로스쿨 건물이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역시 사회대 인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국제대학원 도서관은 창 너머가 확 트여 있어 가끔 답답할 때 공부하기 제격이었는데 이제는 앞에 종합교육연구단지밖에 보이지 않는다. 마을버스로 기숙사 삼거리에서 내려올 때도 여유롭게 언덕길을 내려올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순간 교육정보관에 압도되고 만다.

캠퍼스 전반에 걸친 이러한 변화는 어떠한 태도나 인식을 대변하고 있는가. 가장 압축적이면서도 적합한 표현은 요즘 유행하는 ‘실용’일 듯하다. 즉, 공간이 필요하니 단기간에 비용 대비 효용이 가장 높은 방식으로 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이때 효용은 각종 기관에서 대학의 실적을 재는 기준을 토대로 계산되므로 기타 사항들을 고려하되 결국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묻어둔다. 그러나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을 무시하는 셈이다. 옛것에 대한 이해 속에 새로움을 고민하는 것이 학문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라고 한다면 서울대의 공간 변화가 구성원에게 전달하는 분위기는 이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전통은 무시되고 사고를 깊이 전개하는 데 필요한 여유를 허용하는 장소는 줄었다. 사람이 공간을 창조하지만, 공간도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물론 여전히 관악은 자신만의 느낌을 전달하고 있고 아름다운 곳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것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는 충분한 숙고 뒤에 캠퍼스를 개발해 소중한 모습들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학교에 대한 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관악이 학문하는 공간으로서 성숙해가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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