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병폐 낳는 짬밥 논리
현재적 권위를 위한 조작된 신화
남녀의 대립적 구도 아닌
성역의 이면을 온전히 바라볼 때

김지혜 문화부장
‘짬밥’은 군대에서 주는 밥이다. 일반적으로 “너 짬밥 좀 먹었냐?” 아니면 “짬 좀 되냐?”는 식의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군대조직 내에서 밥을 많이 먹은 만큼 군 생활을 오래했는가를 묻는 표현으로 군대 밖에서도 연공서열에 따른 지위를 물을 때 사용된다. ‘짬밥의 논리’는 사병 간 계급과 서열로 작용해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상위자의 지시에 무조건 응해야 함을 말한다. 군대의 존재 이유가 민주주의 수호임에도 아이러니하게 군대 내에서는 자유와 평등의 보편적 가치는 적용되지 않는다. 짬밥의 논리는 한국 근대 징병제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누구도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다.

1999년 폐지된 군가산점 제도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병역에 대한 실효성 있는 보상은 아니지만 딱히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정부로서는 꽤 간편한 방안이다. 더불어 군필자에게 공무원 채용과정에서 가산점을 부여하는 군가산점이라는 상징성 짙은 의제를 던져 병역 이행자의 불이익에 대한 책임을 여성, 장애인, 건강상의 이유로 군대에 가지 못한 남성 등에게 떠넘기는 격이다. 이 얄팍한 실용주의적 사고는 결국 군대에 가는 사회적 약자와 입대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회적 약자를 만들고 말아 난감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세간의 논의다. 현재 나타나는 뚜렷한 남녀 대립구도 양상은 ‘너 죽고 나 죽자’로 흘러가고 있다. 남성들의 ‘여자도 군대 가봐라’는 항변에 이어 여성 측에서 ‘나도 군대 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여성이 폐경기까지 겪는 고통의 2,500일과 군 복무기간 730일을 비교할 때쯤에는 기염을 토할 지경이다.

군대 문제는 한국사회의 온갖 고질적 병폐를 내포한다. 한국사회에서 군대라는 ‘신화’는 한국 남성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에 해당한다. 이 신화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합치시킴으로써 ‘그’는 자연스레 공동의 신성에 의해 매개되는 공동체가 된다. 이 깊은 유대감이 위험과 불안, 고통의 세상을 힘 있게 헤쳐나갈 동력이 된다면 좋겠지만 이건 전제부터 틀린 신화다. 이 신화를 구성하는 신성성은 ‘현재적 권위’를 위해 조작된 신화이며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종용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권위주의와 일상적 폭력의 행행은 군대라는 조직에서의 인격 모독과 상습적 구타에서 기인한다. 또 제대 후 남성의 가부장적 태도를 구축하고 사회관계 전체를 서열화하는 데 일조했다.

이제 좀 솔직해져 보자. 분위기가 유연해지고 시스템이 현대화됐음에도 군대는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곳이고 병역은 여전히 ‘삽질’이다. 폭력과 복종의 규제, 즉 ‘짬밥’의 원리가 지배하는 군대는 그간 한국사회에서 특수집단으로 여겨지며 성역화 돼왔다. 신성하다고 여겨진 병역의 의무는 군 내부의 인권유린과 폭력을 가렸으며 군대 문제 자체가 사회적 의제로 논의될 기회를 박탈해 버렸다. 군대 문제가 전면에 걸려 있던 가수 유승준, 군미필 문제를 이면에 담고 있던 2PM의 재범은 병역제도의 신성성을 모독한 대표적 초상이다. 군필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한 이들을 모두 미국으로 내몰고도 결국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못했다. 그리고 여전히 헛도는 논의는 군대의 불합리를 더욱더 견고하게 하고 있다.

요즘 군 장병의 식단은 한우와 돼지갈비 급식 횟수는 늘리되 열량을 낮춘 식단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웰빙 고단백 다이어트 식단이라도 짬밥 안에 담긴 폭력과 억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짬밥은 짬밥이다. 현 상황을 타개해 갈 진정한 열쇠는 문제의 핵심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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