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슈퍼마켓(SSM)을 둘러싼 진실공방

SSM 파급 효과 둘러싸고 이해집단 간 갈등 일어나

비교체험 극과 극  늦은 시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낙성대의 대형 슈퍼마켓. 반면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바로 옆의 조그만 슈퍼는 가끔 복권을 사려는 손님들만 다녀갈 뿐 한산하다.
사진: 이다은 기자 daeunlee@snu.kr
최근 재벌계열 유통회사의 기업형슈퍼마켓(SSM)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국회 지식경제위의 중소기업청 국정감사가 끝나고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심사가 본격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상인단체와 시민사회는 대형할인점 및 SSM에 대한 개설 허가제가 전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와 지식경제위원회는 SSM도 대형마트 개설에 적용되는 등록제를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SSM 규제, WTO 협정 위반?

정부는 “SSM 허가제가 세계무역협정기구(WTO) 서비스무역협정에 어긋날 수 있다”며 허가제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지경부) 최경환 장관은 지난 6일(화) 국정감사에서 “SSM 허가제는 WTO 서비스무역협정에 저촉된다”며 “허가제 대신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등 등록제를 강화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전통산업 보전지역에 대한 SSM 입점 허가제는 긍정적으로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WTO 출범 이후 약 20년 동안 개설 허가제나 영업시간 규제 등과 같은 국내 규제로 WTO에 제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진보신당은 지난 9일 성명서를 통해 “WTO의 심사체계는 국내 규제가 합리성과 공평성을 상실한 것인지를 판단한 후 서비스무역협정의 위반 유무를 결정한다”며 “지역경제의 균형발전과 중소상인 보호를 위해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는 것은 이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소상인들도 SSM 허가제의 시급한 도입을 촉구하고 있다. 중소상인살리기전국네트워크 강진영 간사는 “지역의 재래시장은 일반시장보다 협소해 이곳만 허가제로 한다는 정부 대책은 어떤 실효성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국회는 서둘러 SSM 허가제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이 이토록 SSM 허가제를 요구하는 이유는 정부가 허가제를 실시하면 등록제보다 SSM 개설 제한이 어렵기 때문이다. 허가제와 등록제는 엄연히 다르다. 법률상 허가제는 개설을 일반적으로 금지하지만 예외적인 요건을 갖추면 개설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실질적 규제가 가능하다. 반면 등록제는 정부 측의 개설가능 요건을 충족시키기만 하면 등록이 가능해 정부가 지역 상권을 고려한 SSM의 개설여부를 제한하는데 한계가 따른다.

◇지경부의 SSM 실태조사

한편 지난 12일 지경부는 “SSM 개점으로 대형마트가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으며 개인 소형슈퍼는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내용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경우 SSM이 진출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소비자의 월 소비지출 비중이 39%를 차지했다. 그러나 SSM이 개점한 지역에서는 32%에 머물렀다. 또 SSM이 진출한 지 2년이 지난 상권에서는 대형마트에 대한 소비자의 월 소비지출 비중이 25%로 하락해 SSM의 진출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대형마트인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개인 소형슈퍼는  SSM이 진출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 소비자들의 월 소비지출 비중이 각각 7%와 8%로 SSM 진출에 따른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경부 김종호 유통물류 과장은 “SSM을 찾는 소비자들은 사전에 살 물건을 미리 정하는 준비된 쇼핑을 하기 때문에 즉흥적 구매 행태를 보이는 개인 소형슈퍼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된 실태 파악 못한 SSM 실태조사

하지만 지경부의 SSM 실태조사는 SSM에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려 조사 방식을 왜곡했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지난 14일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전소연)’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및 소상공인 생존권보장 촉구’기자회견을 열고 보고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소연 최극렬 회장은 “조사대상 중 음식서비스, 약국, 미용실, 인테리어 등 SSM 개점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업종이 과반수를 차지한다”며 “이는 SSM의 영향이 적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조사대상 선정을 조작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또 15일 국회에서 열린 지식경제위 중소기업청 국정감사에서도 이같은 추궁은 계속됐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지경부가 홈플러스 대표가 회장으로 있는 체인스토어협회와 같이 실태 조사를 한 이유가 뭐냐”며 “객관성도 결여되고 의도가 의심스러운 이 조사결과는 결국 SSM 개점을 규제하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하려는 여론조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가 이날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경부가 실시한 조사 결과와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져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현재 SSM에 대한 사업조정신청을 한 68개 지역 중 47개의 실태를 조사한 이 자료에는 SSM 입점 전후로 인근 상인들의 1일 평균 매출액이 47.6% 감소했고 업체당 1일 평균 고객 수는 50% 가까이 떨어졌다.

이처럼 논란이 이어지는 와중에 SSM 관련 유통산업법 개정안이 발의될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과 민주당 이용섭 의원 등 야당 측 의원이 함께 SSM 개설 허가제의 전면적 도입을 골자로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이번주 중으로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어서 논란은 한층 더 가열될 전망이다. 골목상권 영세업자와 유통산업 합리화, 소비자 사이에서 정부, 국회, 중소상인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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