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형 도예 50년의 여정」

그래픽: 김지우 기자
‘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 흙 속에 잃은 그날은 이리 순박(純朴)하도다.’ 김상옥 시인이 그의 시 ‘백자부’에서 노래한 도자기의 이미지다. 오롯한 유백색의 향연이었던 백자는 현대 미술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주되고 있을까.

올해로 도예 인생 50년을 맞이하는 권순형 선생의 회고전은 현대 미술 속 백자의 세계를 한눈에 담는다. 한국 도예계의 원로이자 미대 교수로 30여년을 재직한 초석 권순형 선생의 회고전 「권순형 도예 50년의 여정」이 열린다.

오는 25일(수)까지 MoA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도서 「권순형과 한국 현대도예」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0년대부터 10년 단위의 권순형 작품 일대기를 작품 설명과 함께 선보인다. 전시 기획을 담당한 조형연구소 허보윤 선임연구원은 “권순형 선생은 한국 현대 도예 일세대로 한국 현대 도예의 역사적 이행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인물”이라며 “작가 권순형의 작품을 초기부터 현재까지 한자리에 함께 전시하는 것은 우리나라 현대 도예사에서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 볼 기회”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권순형 선생은 주둥이의 변형, 우둘투둘한 표면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시도했다. 그 이후부터는 형태 변화가 낯설었던 당시의 도예계에 현대 도예를 알리기 위한 많은 실험을 거듭했다. 달항아리, 다완 등 정통 도예 형태를 따르되 유약의 흘림과 다양한 색감의 시도를 통해 현대미를 더했다. 이러한 권순형 선생의 작품들은 전통 도예라는 시간의 굴레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평가받는다.

덩그러니 잘생긴 도자기의 형태가 고요한 옛 백자의 것 그대로다. 작가는 백자의 새하얀 표면을 도화지로 삼았다. 정적인 도자 위에 채색된 청록의 무늬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물방울의 리듬감, 어그러지는 마음 등 이 백자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를 걷는 것처럼 작품에는 숭고함과 설렘이 함께 한다. 그의 작품에는 현대 미술의 유려함이 꼼꼼히 배어 있다. 동시에 도예의 역사와 함께 내려온 몇백 년의 정신은 그대로 맥을 이었다.

시 ‘백자부’의 문구처럼 도예가가 흙 속에 묻은 반세기의 날들은 작품 속에 그리도 순박하고 우직하게 담겼다. 한 해의 저물녘이다. 노(老) 도예가가 한평생의 시간 속에 버무린 전통과 현대를 맛보러 가는 것은 어떨까.

<문의: MoA 미술관(880-9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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