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2년여의 군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오니 어느새 내게 이런 낯선 호칭이 붙어 있었다. 복학생이라면 대개 매일 도서관에 틀어박혀 전공 공부에 몰두하거나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 역시 남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바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5월 대학생활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이웃사랑’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봉사활동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봉사하고 보라는 식의 허술한 체계가 아니라 개개인의 선호에 알맞은 봉사활동을 연결해줘 이왕 하는 일을 더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돕는 점이었다.

이웃사랑에 가입하고 나는 실로암 시각 장애인 복지관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곳을 이용하는 장애우 중 다수는 전혀 앞을 못 보는 게 아니라 저시력자로 확대독서기를 사용해야 했다. 나는 지난해 수능에서 시간이 부족해 고배를 마신 재수생 친구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맡았다.

초등학교 시절 뚜렷한 원인 없이 시력을 잃게 된 친구는 갖가지 상처와 절망을 겪은 탓에 대하기 힘든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공부하다가 목소리가 조금 커질라치면 자기가 안 보이는 게 나를 답답하고 힘들게 하는 것 같다면서 심하게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몹시 당황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한 마디씩 무심코 내뱉는 아이의 비관적인 말이었다. 예전에 공부를 가르쳐주던 대학생 선생님들은 자기가 잘 안 보여 답답하기도 했겠지만 말도 잘 안 들었기 때문인지 얼마 못 가 하나같이 말없이 떠나갔다면서, 내게도 열심히 가르쳐줘서 고맙지만 앞으로 힘들어지면 부담 없이 그만둬도 된다는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던지는 친구의 말에 무척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오기가 났을까? 한두 살이라도 더 많고, 무엇보다 밝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어 더 행복한 내가 참고 이해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러는 새 그 아이에게 한층 너그러워진 나를 발견했다. 또 봉사를 떠나 친한 동생으로 대하고 싶다고 터놓고 얘기했다. 때로는 거칠다 싶을 정도로 호통을 칠 수도 있겠지만 공부 외에도 서로에게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주고받자는 제안도 했다.

그러면서 둘 사이에 벽이 조금씩 사라졌던 것 같다. 숙제나 예습이 불성실하면 아이의 장애와 상관없이 수시로 호통을 쳤기 때문에 나는 ‘호랑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그리고 내가 애칭을 얻을 동안 녀석은 차츰차츰 숙제와 예습을 성실히 하게 됐고 그 덕분인지 실력도 많이 향상됐다.

신체의 일부 중 하나인 눈이 가진 역할을 보충해주고 싶었을 따름인데, 확대독서기를 이리저리 만져가며 남들보다 느린 만큼 한 자라도 더 공부하려 애쓰는 친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친구는 내게 장애에 굴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맑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일에 대한 행복까지도 알게 해 줬다.

11월 12일, 어느새 마무리된 두 번째 경주에서 친구가 용기를 잃지 않고 완주했기 바란다.

전효준
농경제사회학부·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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