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성숙한 의식과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민주주의의 승리 이끌어내

지난 한 주간 세계의 이목을 가장 집중시킨 사건은 사실 대한민국의 대통령 탄핵이 아니라 에스파냐에서 발생한 테러와 그에 뒤이은 총선에서 야당인 사회노동당이 승리한 것이다. 17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이 동시다발적인 열차폭파 테러는 에스파냐 총선 며칠을 앞두고 일어나면서 미국의 강력한 동맹정권이자 재집권이 유력하던 국민당의 패배로 이어졌다. 테러로 인해 민주국가의 총선결과가 영향을 받아 미국 중심의 반 테러 전선에 처음으로 균열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세계의 반응들을 살펴보면서, 다시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먼저, 한편에서는 에스파냐의 총선 결과는 사회노동당의 승리가 아니라 ‘알 카에다의 승리’라고 평가한다. 집권 8년간의 경제성장을 인정받으며 선거기간 동안 우세를 보였던 국민당이 패배한 것은 테러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총선결과를 부시의 대 테러 전략에 대한 타격이라고 보도하고, 미국인들은 자국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테러가 발생할 경우 오히려 부시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테러리스트에 ‘양보’한 에스파냐인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알 카에다 관련조직이 에스파냐 국민의 ‘현명한 선택’에 따라 에스파냐에 대한 ‘휴전’을 선포했다고 한 아랍 신문의 보도 역시 이러한 인식을 드러낸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판단은 미국과의 동맹을 반 테러 전쟁과 동일시하는 오류라고 지적하면서, 에스파냐에서 사회노동당의 승리는 오히려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반 테러 전쟁과 ‘부당한’ 이라크 침공이 일으킨 역풍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이에 동조한 국민당 정권의 정책이 도리어 테러리스트들의 저변을 확대하며 에스파냐를 테러에 노출시켰다는 것이다. 익히 테러를 경험한 유럽인들이 주장하듯이 군사력은 테러에 효과적인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사회노동당의 승리는 에스파냐인들이 마드리드 테러를 계기로 바로 이러한 판단에 동의했음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와 같이 에스파냐 총선결과를 단지 테러에 대한 에스파냐 국민의 인식변화로 바라보는 것은 실제 에스파냐인들이 총선에서 문제 삼은 바를 간과하는 것이다. 에스파냐 국민들은 테러 발생 직후부터 집권 국민당이 상반되는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조작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테러를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인 ETA의 소행으로 오도하자 국민당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더욱이 국민당이 언론에 대해 사실상의 검열압력을 행사하려고 했다는 사실은 에스파냐인들에게 과거 프랑코 독재의 망령을 상기시켰다. 그래서 이전 선거와 달리 젊은 층 또한 대거 투표에 참여했던 것이다. 결국 에스파냐 총선은 테러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집권 국민당이 보인 반민주적인 행태에 대한 불신임이었고, 바로 이러한 면에서 에스파냐 총선은 그 누구도 아닌 민주주의 승리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

사실 세계의 시각에서 에스파냐는 대한민국처럼 민주주의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나라로 여겨진다. 그래서 에스파냐 국민의 투표 성향은,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한 분석과 마찬가지로, 테러로 인해 격한 감정에 휩싸인 국민이 보이는 미성숙한 태도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미성숙한 것은 미디어 조작을 시도한 국민당이고 에스파냐 국민―특히 젊은이들―은 이를 민주적으로 심판하는 성숙함을 보였다. 에스파냐의 총선이 한국의 탄핵정국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도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조준희 인문대석사과정ㆍ서양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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