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첫 아시아 순방이 화제였다. 중국 자금성을 관람하는 장면, 태권도 시범을 보이는 모습 등이 관심을 모았는데 유독 눈길을 많이 끈 것은 일본 천황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일본 황궁을 방문한 오바마는 영접 나온 아키히토 천황과 악수를 하면서 몸을 거의 반으로 접었다. 동양에서 나이 어린 사람이 연로한 어른에게 정중히 인사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그런데 오바마란 사람은 한 국가 그것도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인지라 그의 예법을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미국 내 보수파들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대부분 대통령으로서 적절하지 못한 처신이라며 공격했고 어떤 논객은 ‘배신행위’라고까지 몰아붙였다. 그러나 미국 내 평가가 그리 쌀쌀맞은 것만은 아닌 듯하다. 『타임』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7%가 이러한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표명했다. 아마도 오바마의 손익계산에서 더 중요했던 것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었을 것이다. 특히 과거 맥아더 장군과 천황이 함께 찍은 치욕적인 사진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감회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일본에 주둔한 미군 총사령관 맥아더는 당시 천황 히로히토를 사무실로 불러 함께 사진을 찍었다. 천황은 공경의 예를 다한 연미복 차림으로 긴장한 모습인 반면, 맥아더 사령관은 사무복 차림으로 뒷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약간은 거만한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이 사진으로 천황은 신의 반열에서 나약한 인간으로 전락했고, 패전국 일본은 승전국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이 대다수 일본인들에게 각인됐을 것이다.

한편 국내에서는 정운찬 총리의 사진 한 장이 주목을 받았다. 부산 사격장 화재 참사로 희생당한 일본인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위로하는 모습이었다. 아직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 나라의 공공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은 다른 장면, 다른 희생이 오버랩되기 때문이었다. 용산참사 희생자 및 유가족들, 쌍용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꿈을 꿔 본다. ‘핵 없는 세상’을 부르짖는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방문해 2차대전 당시 원폭투하에 대한 유감을 표한다. 한일합방 100주년을 맞아 일본 천황이 과거 우리 민족에게 가해진 고통과 희생에 대해 고개 숙여 사죄한다. 대통령이든 총리이든 공권력사용에 만전을 기울이며 불의의 사고가 있는 경우 무릎을 꿇고 사과한다. 그리고 졸렬한 수법으로 심의도 없이 법안을 통과시킨 행위에 대해 국회의장이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법안 심의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장준영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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