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에 빠진 화성 연쇄살인 사건, 1년여의 기간에 20여명을 살해한 유영철, 모두를 경악시킨 성범죄자 조두순까지, 도시의 어둠 속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건씩 범죄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각종 범죄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엄습하는 두려움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은연중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죄악의 시대」展은 이러한 범죄의 공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오는 31일(일)까지 대안공간 루프에서 열리는 「죄악의 시대」展은 한국을 흔든 범죄사건을 분석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상의 연쇄살인기록을 작성하거나, 지도위에 실제 범죄 현장마다 스티커를 붙여 범죄자의 행적을 좇는다. 작가는 현장 검증 자리에 찍힌 자신의 팔을 클로즈업하기도 하고, 주변을 괜히 의심하며 범죄의 그림자에 한 걸음씩 다가선다. 전시는 8명의 작가와 8명의 연구자가 만들어 낸 예술작품이자 사회적 보고서다. 틀에 박히지 않은 예술의 시선이 만든 보고서에서 범죄의 공포는 그 실체를 드러낸다.

한쪽 벽면 가득한 수십의 몽타주가 눈을 홉뜨고 있다. 진한 연필 데생의 선으로 묘사한 얼굴들이 음산하다. 찢어진 눈, 비웃는 입, 돌출된 광대뼈, 미간의 주름. 이 살기 어린 표정은 작가의 고등학교 친구들의 얼굴이다. 소위 선량한 군중을 일그러뜨리며 작가는 설명한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범죄자는 험상궂게 생긴 사람도 아니고 근육질의 인물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몽타주는 범죄자를 그려준다” 그는 몽타주를 ‘우리가 모두 범죄자일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이라고 해석하며 공포를 양산하는 매체를 비꼰다.

친구의 얼굴2(부분), 종이위에 연필, 29-42cm, 1-50piece

어둠에 근접한 작가들은 고발할 대상을 논의한다. 연구자 노명우는 "국가가 사람으로서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 집단은 국가를 기소할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국가는 역으로 이러한 그들의 정당 행위를 사회의 범죄라 명명한다"고 설명한다. 연구자 이정훈은 “특정 사회에서 형벌의 집행대상으로 정의된 행위가 바로 범죄”라며 “이러한 범죄는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타인을 구별하고자 정의해 놓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 전시는 범죄가 ‘무엇인가를 정의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을 공포로 일그러뜨린 것은 사회와 매체라고 말한다. 전시를 기획한 박상우 프로그래머는 “영화를 비롯한 각종 매체는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며 입맛에 맞게 범죄를 요리한다”고 지적한다.

작가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범죄의 공포를 끄집어 낸 행위의 결과물은 논의의 마지막에서 도출된다. 결론적으로 이 전시가 고발하기로 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작가들은 이러한 범죄자도 사회의 희생양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갸웃거려본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사회가 만들어낸 죄악과 사회 시스템 그 자체다. 「죄악의 시대」展은 사회의 틀 속에서 본연의 뒤틀림보다 더 기괴하게 비틀린 범죄의 공포를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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