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유난히 비가 잦다. 봄에도 일 주일에 두세 날은 비가 내렸고, 장마철엔 남부지방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8월 들어서도 중부지방이 폭우에 잠겼다. 우리나라의 장마는 평균적으로 6월 20일쯤 시작해 7월 20일 무렵에 끝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8월에 내리는 비의 양이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나왔다. 기상청과 학계에서 8월 호우를 장마의 연장으로 볼 것인지 또는 새로운 개념의 우기로 구분할 것인지 고민할 정도라고 한다. 기후의 변화는 농업, 계절 산업, 휴가 등 다양한 분야에 계획을 세우는 데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장마철의 변화로 인한 것 못지 않게, 요즘 우리 사회가 커다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 중에서도 가장 첨예한 것은 아마도 진보와 보수의 대립일 듯하다. 그 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던 보수 집단들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양 집단 간의 갈등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다. 혹자는 지금의 상황이 해방직후와  같다며 ‘남남갈등’으로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이제야 우리 사회가 균형을 찾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공생을 도모하는 다원화된 사회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와 위치를 선명하게 밝히는 일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혼란이 필요악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알고 있다.


장마 속에서 좌우의 대립을 보고 있자니, 윤흥길의 『장마』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아들이 빨치산으로 들어간 친할머니와, 아들이 국군으로 가서 전사한 외할머니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이다. 자신의 아들만을 걱정하며 대립하는 두 노인의 모습은 자기 의견만을 고집하며 반목하는 좌[]우 대립, 6[]25의 축소판이다. 빨치산 아들이 돌아오리라 점쟁이가 예언했던 날, 난데없이 큰 구렁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친할머니는 아들이 죽어 돌아온 것으로 믿고 실신한다. 이때 먼저 자식을 잃은 외할머니가 나서 구렁이를 정중하게 뒷산으로 돌려보내고, 이를 계기로 두 노인은 화해에 이른다. 작가는 화해에 이르기까지의 길고 어두운 기간을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라고 요약하며 소설의 끝을 맺고 있다.


구렁이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 두 노인이 화해에 이른 것은 똑같이 자식을 잃은 서로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상대방에 대한 인정은 성자의 한없이 넓은 관용이나 ‘너는 너, 나는 나’ 식의 개인주의적 윤리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듯싶다. 오히려 그것은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긴 시간 끝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지금은 비록 서로의 차이점만이 부각되고 있지만, 극우[]극좌의 대립이 아니라 좌[]우의 대립인 한, 서로의 공통점을 찾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장마도 이제 한풀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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