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자치, 학문 자유 보장할
혁신적 비전 갖춘 서울대 총장
공정한 선거로 선출돼
바깥 선거판에 교훈 줄 수 있길

제25대 서울대 총장 후보들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다. 학내 선거지만 대표자를 뽑는 선거 과정은 ‘정치’의 모든 속성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서울대 총장이 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현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은 총장의 자격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서울대 총장은 헌법이 보장하는 ‘대학의 자치’와 ‘학문의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근래 국무총리실 산하 세종시 기획단 고위간부는 서울대의 비협조를 비난하면서 “서울대 보면 판을 확 갈아엎고 싶다”, “서울대에 이장무 총장이 있으면 안 된다” 등 저급하고 경박하고 무례한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총장은 국립대학교의 수장으로 정부와 소통하고 교섭해야 하지만, 동시에 대학을 흔드는 부당한 외압과 간섭에 대해서는 단호히 맞설 수 있는 배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총장은 정부를 비롯한 대학 바깥 세력으로부터 학문의 자유와 학문적 엄격성을 모두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 ‘해직교수’가 왜 나왔는지, 근래 ‘황우석 사태’는 왜 벌어졌는지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 서울대 총장은 비전, 조직, 문화의 혁신을 통해 ‘서울대다움’ 또는 서울대의 고유한 역할을 한 단계 더 고양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간 서울대는 많은 발전을 해 왔다. 그러나 서울대는 여전히 묵은 난제를 안고 있다. 융합과 학제간 연구가 강조됐지만 단과대학과 학과의 벽은 여전히 높다. 양 위주의 일률적 교수평가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적 연구, 긴 호흡이 필요한 깊은 연구를 막고 있다. 산업에 종속된 연구와 대학 바깥과 절연된 연구라는 반대되는 편향이 서로 착종(錯綜)한다. 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후배와 제자는 외롭고 황량한 길 위에 있다. 학생은 스펙 쌓기나 자격증 따기에 여념이 없다. 이런 문제점이 해결될 때 서울대의 세계 대학순위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후보가 더 많은 예산을 따오고 더 많은 기부를 받아오겠다고 약속한다. 좋은 일이며 공약 실현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상의 문제는 돈이 모자라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서울대가 법인화되더라도 서울대는 ‘상단’(商團)이 아니며 총장은 ‘상로배’(商路輩)의 우두머리가 아니다. 또한 서울대는 중급의 지식을 신속하게 대량 산출하는 것을 임무로 하는 “지식 양계장”이 아니다. 요컨대, 최상급의 선도적 가치, 지식, 기술, 대안을 탄생시키는 학문공동체로서의 대학의 의미를 체득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총장이 필요하다.

셋째, 서울대 총장은 대학 행정가 또는 대학 관리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 고등교육의 지도자이다. 그간 서울대는 “연구중심대학”이라는 모토 아래 연구역량 강화와 업적 산출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 서울대의 교육은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될 청년들의 머리, 몸, 마음의 원형(原型)을 형성한다. 우수 인재, 잠재력 있는 인재를 뽑는 것만큼이나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단지 똑똑한 ‘분절적(分節的) 전문가’가 아니라 타인, 사회, 세계와 소통하면서 각 분야에서 도전과 혁신을 주도하는 ‘통할적(統轄的) 지도자’를 키우는 교육을 이루어낼 총장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총장후보초빙위원회의 13인 위원, 총장선거의 유권자인 교수와 직원들이 소속 단과대학이나 개인적 연고에 얽매여 ’묻지마 투표’를 하거나, 제공될 편익과 혜택 때문에 자신의 표를 파는 일이 없길 희망한다. 어떠한 서울대를 꿈꾸는지 진지하게 자신과 후보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비전 투표’이다. 그리고 후보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공정하고 깨끗하게 경쟁해 대학 바깥의 선거판에 교훈을 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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