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인문학 지원 사업

‘학교 자체 기준 선발’에서 ‘장학재단 직접 선발’로 장학제도 개편
인문한국 연구소 선정 과정에 외부 압력 작용했다는 의혹도

지난 1월 15일 한국장학재단이 돌연 ‘미래한국 100년 인문학 장학금’(미래한국)지원 사업을 종료했다. 미래한국은 인재 양성을 통해 위기에 처한 인문학의 기반을 새롭게 다진다는 목적으로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에서 실시한 사업이다. 지난해 6월 학진이 한국과학재단과 통합돼 한국연구재단으로 탈바꿈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지원은 인문학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한국연구재단의 대표적인 인문학 지원 사업들을 점검해보고자 한다. 

◇말뿐인 인문학도 지원, 장학금은 어디로?=2006년 학진이 인문학의 토대를 탄탄하게 한다는 목표로 향후 10년을 바라보고 시행했던 미래한국 사업은 학진이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되면서 한국장학재단 소관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지난 1월 한국장학재단은 미래한국사업을 예고없이 종료하고 ‘국가연구장학생’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은 인문계열뿐 아니라 사회계열 학생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국장학재단은 “그 동안 사회계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거의 없었다”며 사업 수정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불시에 지원이 대폭 줄어든 인문학 연구자들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새로 편성된 장학제도의 예산에 따르면 인문학도들이 입게 될 피해는 적지 않다. 늘어나는 지원 대상에 비해 증액 정도가 작지 않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래한국 사업이 시행될 때 연간 50억원이 책정됐던 장학금이 국가연구장학생 사업을 시작하면서 겨우 3억원 증가하는 데 그친 것이다. 2006년에 목표로 잡았던 인문학 지원은 사실상 유명무실해 지는 셈이다. 이에 대해 국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인문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단체 ‘다중지성의 정원’의 조정환 대표는 “기존의 예산 50억원도 국내 인문학도의 수를 고려하면 절대적으로 부족한 금액인데 이것을 더 줄이겠다는 것은 인문학 연구지원을 그만두겠다는 재단 측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다른 학문에 비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어려운 인문학에 지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장학 대상을 선발하는 방식의 문제도 지적된다. 이전 사업이 재단에서 학교별로 배정한 인원에 따라 학교 자체의 기준으로 장학생을 선발했다면 바뀐 장학지원사업은 재단에서 직접 지원자를 심사해 선발하는 방식이다. ‘재단의 입맛에 맞는 인재만 선발될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힘든 계획인 것이다. 조정환씨는 “순수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부가가치가 큰 연구물을 생산할 사람들 즉, 인문학과 경영을 접목한 학문 등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지원이 돌아가게 될 것”이라며 “인문학 연구 종사자 중 이번 장학사업에서 수혜를 얻는 이들은 극히 일부일 것이며 인문학 내에서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인문한국 지원사업’, 재단을 위한 인문학 양성 프로젝트?=인문한국(HK) 지원사업은 연구계획서의 검토를 통해 선정된 연구소를 대상으로 10년간 본 연구에 대한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다. HK사업은 연간 최대 10억원을 지원해주는 큰 사업인 만큼 해당 연구교수들은 결과물을 산출해 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동열 교수(불어교육과)는 “HK사업의 연구교수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과중한 업무를 맡고 있다”며 “이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연구분야에도 참여해야 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연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또 사업시작 당시 연구재단이 약속했던 5~6명의 정년 연구교수 임용도 실제로 이뤄지고 있지는 않다. 사업계획서를 쓰는 단계에서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년연구교수로 임용할 것’을 총장확약사항으로 밝혀야 하지만 실제로 시행되는 곳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되지 못한 작은 연구소들은 더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2009년도  HK사업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박 교수는 “규모는 작아도 인문학에 대한 충일함으로 똘똘 뭉친 작은 연구소들은 사업에 지원하더라도 기반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기반심사는 장기간에 걸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소의 규모가 작은 경우는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기반심사와 1,2차 심사를 통과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벽은 남아있다. 지난해 1,2차를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으로 통과했지만 마지막 3차 심사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탈락의 고배를 마신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그 예다. 독일연구소의 책임자였던 김누리 교수(중앙대 독어독문학과)는 그 당시에 대해 “3차는 일종의 요건 심사로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심사가 아님에도 3차 심사에서 1,2차의 압도적인 점수 차를 모두 따라잡혔다”며 “이는 외부적 압력이 작용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기관의 심사를 통해 지원을 받게 되는 경우 연구행위가 기관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지원금의 대가로 결과물을 계속 제출해야 하는 것도 결과물을 얻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인문학의 연구에는 장애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된 후의 인문학 지원사업이 과연 취지대로 인문학 내실에 기하는 사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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