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법인화 반대론]

법인화와 관련해 핵심이면서 가장 중요성을 지닌 문제는 대학 자율성의 확보나 본부가 내세우는 ‘세계 10위권 대학으로의 진입’ 등이 아니라 학문·교육의 시장화, 상품화와 공공성 확보 중 어느 것을 지지할 것인가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관계 전체가 시장적 관계로 재편되거나 시장적 관계에 종속되면 화폐권력이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하게 되고 모든 개인들과 단위들이 양육강식의 전면적인 경쟁관계를 맺게 된다. 그렇게 되면 칼 폴라니가 『위대한 전환』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사회의 파괴와 황폐화가 초래되고 이런 사태는 결국 다시 파괴된 사회의 자기 회복을 위한 운동, 즉 ‘시장에 대한 사회의 복수’를 불러일으킨다. 때문에 시장경제체제의 안정적인 재생산을 위해서라도 시장화, 상품화의 파괴적 효과를 상쇄하는 비시장 영역의 창출이 요구되고 이런 비시장적 영역 중 가장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학문과 교육이다.

대학을 기업화하고 학문·교육을 시장화, 상품화하면 서울대가 돈벌이 경쟁에서 다른 대학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본부는 법인화를 통해 제한이 없어지는 수익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기초학문을 육성하고 학생들에게도 혜택을 베풀겠다고 한다. 그러나 돈벌이에 종속된 기초학문은 기초학문다운 기초학문으로 발전할 수 없다. 또 돈벌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것은 기업가의 발상은 될 수 있어도 학문연구자와 교육자에게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발상이다. 서울대에겐 돈벌이를 통한 재정확충이 실현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달콤한 유혹’이긴 하지만 그 유혹을 떨쳐버리지 않으면 서울대는 타락할 수밖에 없고 서울대의 타락이 가져올 사회적 피해는 실로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사실 서울대는 이미 국립대다운 면모를 많이 잃어버렸다. 법인화는 이 과정을 최종적으로 완결짓게 할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는 지금이라도 자신을 학문·교육 공공성 확보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착수해야 한다. 서울대를 돈벌이를 가장 잘하는 대학, 미국적 기준에서 본 ‘세계 10위권 대학으로의 진입’ 등을 목표로 삼는 대학이 아니라 기초학문과 기초과학기술 중심대학으로, 사회현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지성의 전당으로,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보편적, 인류적 가치의 실현에 가장 잘 이바지하는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시장주의자들에 의해 점령돼 가는 서울대를 구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 놓여있다.

법인화반대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 김세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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