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거부한’ 자퇴생의 절규
본분 망각한 대학의 현실 드러내
사회 요구에 순응하기보다
더 나은 사회 만들 호연지기 길러야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G 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지난 3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김예슬 양이 자퇴하며 한 말이다. 이 선언을 들으면 유신정권에 대항했던 김상진 열사의 ‘양심선언문’ 이나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이 연상된다. 비장하고 간절하다 못해 처절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하면서 사회문제를 고발했는데 이 사회는 의외로 냉담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대로 묻어 두기엔 이 절규가 너무 막중하고 간절하다.

지금 우리 대학은 어딜 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학마다 ‘초일류 대학’ 등 비전을 제시하고 발전을 추구하지만 과연 무엇이 일류를 판단하는 잣대인지 분명하지 않다.

법인화를 앞두고 대학엔 많은 논의가 있다.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대학은 자율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자율성을 요구하기에 앞서 그만한 능력과 지도력이 있는지, 대학 본연의 기능보다는 조직의 성장과 운영효율 제고를 위한 요구는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안주하고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과 함께 대학이 사회구조적 문제를 고착시키는 시스템의 일부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대학을 이끌어 온 지도자들은 비효율을 내세우며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교육 개혁을 외쳐왔고 그 결과 대학의 겉모습과 외부평가가 좋아졌다. 그에 비해 대학이 사회문제를 고착화하는 데 대한 반성이나 개선 노력은 보기 어렵다. 교수들은 연구업적 쌓기에 여념이 없고, 학생들은 획일화된 경쟁의 주로(走路) 위에서 달리기만 강요받고 있다.

우리 사회는 소득 양극화에 신음하고 좌우로 갈려 무모하게 갈등하고 있다, 대학은 사회를 선도할 지도력을 상실하고 직업훈련소와 연구기관으로 전락했다. 대학의 사회에 대한 지도력은 사회를 닮아가기보다는 사회의 부족함을 채워줄 가치를 개발하는 지성에 근거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대학생의 15% 이상이 일반 휴학생으로서 소위 ‘스펙’ 만들기를 위하여 국외연수를 떠나고, 재학생들도 취업을 위한 사교육에 졸업을 미루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졸업한 선배들은 청년 백수로 젊음을 힘겹게 버텨내지만 개인의 무능력을 탓하기엔 그 비율이 너무 높다. 이 같은 현실이 존재하는 한 대학이 추구하는 기초교육 강화, 즉 우수한 외국어 능력과 통섭의 눈을 가진 유능한 인재양성은 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대학생들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면서 잠을 줄여 공부하는 한편 진학조건을 맞추기 위해 동기부여도 없이 봉사시간을 채워 대학에 들어왔다. 입학 후에도 불안한 미래를 대비해 국가고시와 각종 사(士)자격증, 전문대학원 진학,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에 청춘을 즐길 여유도 없다. 대학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강조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는 이미 사회로부터 많이 배웠고, 봉사도 취업을 위한 스펙의 일부로만 인식한다. 미래를 책임질 젊은 청년층이 좌절하고 있는데 대학이 발전할 수는 없다.

더는 대학이 대학생들이 직면한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경쟁에 지치고 왜곡된 가치관에 찌든 젊은이에게 금전이 만능은 아니고, 실패가 절망은 아니며, 사회의 요구 사항에 순응하기보다는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사회를 개선해 나갈 호연지기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사회에서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조직개혁이나 효율 향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보다 나은 미래 사회의 다양한 덕목을 제시하고, 대학이 그 모범이 되며, 그 모범을 보면서 자라난 인재를 교육해 주는 것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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