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자인수도 사업 진단]

지난달 23일과 24일 서울은 세계디자인수도의 공식 개막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뤘다. 이는 2007년 10월 국제산업디자인단체협의회가 서울을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World Design Capital, WDC)」로 선정한 이후 ‘4U’ 정책을 수립, 서울의 곳곳을 재구성한 성과였다. 이 일환으로 서울의 디자인 역사를 IT 기술로 보여준 「서울디자인자산전」은 관람객의 호응에 힘입어 이달 28일(일)까지 3주간 연장됐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성공의 이면에 세계디자인수도 사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노점상 강제 철거, 일방적 정책 수립, 강요된 디자인 사업 등의 문제점에도 추진된 서울디자인수도 사업. 그들의 ‘4U’ 정책에 따른 디자인수도 사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2008년 말 '디자인서울거리'중 하나로 지정된 강남대로에서 노점상 철거반이 노점집기를 강제 압수한 흔적들.
노점상들을 강제 철거한 거리엔 이제 개당 천만원짜리 가로등과 서울시에서 일괄적으로 규정한 디자인 포장마차들이 들어서게 된다.
사진: 최창문 기자 ccm90@snu.kr

◇Universal: 사람 중심의 살기 편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지난달 치러진 세계디자인수도의 개막식장 앞에서는 서울디자인수도 사업으로 생계를 위협받게 된 노점 상인들의 집회가 열렸다. 2008년 말부터 ‘디자인 노점 거리’ 조성으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어온 이들은 현재 노점이 강제 철거당한 상태다. 당시 사람 중심의 도시를 만들겠다던 서울시는 되레 노점상 철거를 위해 2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용역을 동원해 노점들을 모두 철거했다. 
 
노점상이 강제로 철거된 거리는 이제 천만원을 호가하는 ‘디자인 가로등’이 들어서게 된다. 국공립 보육시설 예산, 임대아파트 수선 비용 등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시점에 곧 서울 전역에 설치될 이 가로등은 서울 곳곳에 세워져 도시의 어둠을 감추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영창 교수(영남대·산업디자인학부)는 “말로는 모든 사람을 위한 행복한 도시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이 사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Ubiquitous: 언제 어디서나 막힘없이 소통하는 도시=2009년 말 화제가 됐던 드라마 ‘아이리스’는 광화문 광장을 무대로 대규모의 총격신을 촬영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동안 서울시는 시민의 안전과 자유로운 통행을 우선한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와 문화행사를 불허했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희망팀장은 “시민들의 의견이 표출되는 집회나 문화행사는 불허하면서 드라마 촬영을 위해 광화문 광장을 내준 것은 이중잣대”라며 비판했다. 이 논란은 언제 어디서나 소통하는 도시를 지향한다는 서울시의 소통이 ‘누구와의 소통’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게 한다.    

이 같은 서울시의 소통 없는 사업은 일방향적 정책 수립과정에서도 나타난다. 홍경한 미술 평론가는 “공공디자인 사업은 시민 생활과 문화를 포괄하는 영역이므로 시민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며 “서울시는 디자인 수도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형식적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 대상 공청회를 진행하는 등 소통을 위한 노력에 소홀했다”며 유감을 표했다.

◇Unique: 서울만의 개성으로 서울다움을 구현하는 차별화된 도시=오세훈 시장은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며 “서울, 나아가 한국만의 역사성을 보여줄 광장을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1년 3개월 동안 475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완성한 광화문 광장은 서구 르네상스 시기의 정원식 광장을 닮아 있었다. 이곳에서 서울만의 개성이나 역사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해 건축 월간지 「공간」의 박성태 편집장은 “국외 디자인을 수입해 무분별하게 차용할 것이 아니라 서울만의 특성과 역사성을 파악하고 공간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담아냈어야 했다”며 비판했다. 또한 조명래 교수(단국대·도시계획학)는 “서울시의 선간판, 벤치, 가로등이 하나의 통일된 디자인으로 교체되면서 도시의 개성과 문화적 맥락이 삭제된 채 서울시의 모습이 통일적이며 일률적으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by U 디자인: 시민 모두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창의 도시=서울시는 뉴욕의 옐로우 캡, 런던의 블랙 캡과 같이 서울을 상징할 ‘꽃담황토색’의 택시를 고안해냈다. 작년 2월 도입된 이 ‘해치택시’는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정한 꽃담황토색을 택시 회사가 직접 도색해야 했다. 비용 역시 택시 회사에게 떠넘겨졌다.

또 서울시에는 일괄적으로 디자인 한 ‘디자인 포장마차’도 들어서고 있다. 이제 노점 상인들은 천만원을 호가하는 이 ‘디자인 포장마차’를 사용하지 않으면 노점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이에 서부지역노점상연합은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장사를 해오던 노점 상인들에게 천만원짜리 포장마차를 강요하는 것은 탄압”이라며 최근까지도 노점 앞에서 투쟁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이에 이영창 교수는 “공간을 재구성하는 공공미술은 그 공간을 향유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고려되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제 개막식을 마친 세계디자인수도 사업은 도시의 미학적 재구성이라는 본래의 취지를 벗어나 반미학적인 도시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간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공간은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틀 지우는 형식이자 그들에 의해 생산되고 변경되며 의미가 새겨지는 것이다. 「미술, 공간, 도시-공공미술과 도시의 미래」의 저자 맬컴 마일스 교수(영국 브룩스대)는 “개발 사업자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개발 사업이 자유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추려 공공미술을 이용해 개발 사업 자체를 미화한다”며 “개발 사업이 예술과 닮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일은 개발 이데올로기적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고 디자인 사업 뒤에 감추어진 개발업자의 ‘발톱’을 경고한 바 있다. 홍경한 평론가 역시  “세계디자인수도 사업은 디자인 자체를 목적에 둔 것이 아니라 경제·정치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며 “지금의 디자인 사업은 디자인이 아닌 재개발일 뿐”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들의 지적처럼 정치적·경제적 논리라는 발톱을 감춘 채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꾸며지는 서울을 모든 이들의 삶이 고려된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새로운 디자인의 모습을 고민해 봐야 할 때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