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경의 마음에 그려진 지도

엄마의 49제가 끝나고 동생 ‘후경’은 홀연히 집을 떠나버린다. 동생이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 언니 ‘정경’은 후경을 실종 신고하고 고속도로를 전전하는 동생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정경이 동생의 실마리를 찾는(find) 중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창(view)’에 비친 후경을 이야기하고 그때마다 정경의 눈에 미친 후경의 이미지는 변해간다. 마치 하나의 대상에 대해 수많은 정보가 혼재하는 인터넷처럼.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열리는 ‘인디포럼 월례비행’은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담아낸 독립영화를 상영하며 주목을 받아왔다. 오는 20일(화) 독립영화 극장 ‘씨네코드 선재’에서 열리는 ‘인디포럼 월례비행’은 김정 감독의 「경(viewfinder)」을 통해 디지털 세상 속 현대인을 조명한다.

「경」, 김정 감독, 2009. 95min, 한국, 컬러
오늘날 우리는 디지털로 대변되는 가상세계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고 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는 공허하다.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사실’이 새롭게 해석되고 재창조가 거듭되는 가운데 결국 진짜 사실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김정 감독은 이 점에 주목해 ‘디지털시대’라는 알레고리를 정경이 고속도로(네트워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각각 다르게 회상하는 후경의 이미지로 녹여낸다.

95분이라는 러닝타임동안 영화는 군대 때문에 상상력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남성 애니메이터의 관점에서, 후경과 동거하는 외국인 근로자의 관점에서, 인터넷에서는 유명 블로거지만 현실에서는 온 종일 휴게소에서 일하는 직원의 관점에서 후경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보여준다. 그들에게 후경은 군대를 가지 않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 ‘외국인 근로자’라는 딱지로 차별하지 않는 다정한 동거인이기도 하며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처럼 후경은 각각의 창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띄고 복합적인 정체성을 갖는다. 감독은 묻는다. “디지털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비치는가?

감독은 어떠한 해답도, 가능성도 전달하지 않는다. 각각의 관점은 세상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창’을 창조하며 또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감독은 말한다. “세상은 ‘디지털 수족관’을 닮았다”고. 각자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부유하는 인물들과 그 인물들을 또다른 창인 스크린이라는 유리벽을 통해 바라보는 관객. 그 안을 부유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문의: 인디포럼 홍보담당 전은경010-843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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