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문화계에서 좌파인사들을 적출하려 한다는 것은 문체부 출범 2년이 조금 지난 지금 공공연한 비밀이 돼버렸다. 이제 이러한 현상은 창작의 자유에 근거를 두는 예술작품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가사에 ‘촛불’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방송이 금지되거나 반대로 정권우호적인 뮤지컬 작품들이 전폭적 지원을 받는 등 소위 예술 작품의 ‘색깔’에 따라 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정치적 심의와 편향 지원에 시달리는 문화계

전직 야구선수 이상훈씨가 보컬을 맡고 있는 락그룹 「WHAT」은 최근 음반을 냈지만 수록곡 중 일부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노래가 정권 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중에는 단지 ‘촛불’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방송이 금지된 경우도 있다.

영화계에 대한 정치적 간섭도 상당하다. 참여정부 시절 영화계를 이끈 단체들이 주최했다는 이유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좌파영화제’라는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와 함께 6·25 전쟁 발발 직후 미군이 노근리 철교 밑에서 한국인 양민 300여명을 사살한 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연못」은 14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거론됐으나 보수단체들의 정치 공세에 밀려 끝내 선택되지 못했다. 이 밖에도 정치·사회적 비판이 담긴 영화가 외부의 정치적 압력에 의해 제작이 중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웹툰 작가 강풀의 「26년」을 원작으로 한 영화 「26년」은 전직 대통령 암살 기도라는 ‘위험한’ 소재라는 이유로 정치적 압력이 들어와 제작을 중단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편 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예술작품에는 적극적인 지원이 이어지고 있어 앞에 상황과 대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국립극장에서는 북한 요덕수용소의 적나라한 실태를 다룬 뮤지컬 「요덕스토리」가 공모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공연예술활성화 지원사업의 총 예산 91억원 중 1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또 북한에서 포로생활을 했던 조창호씨의 인생역정을 그린 「아! 나의 조국」과 한국 피난민을 돕는 미군의 박애정신을 부각한 뮤지컬 「생명의 항해」 등 현 정부의 정파적 성향을 띈 작품들은 다른 작품성 있는 작품들을 제치고 무대에 올려졌다.

◇통제되는 예술작품, 자율성과 다양성의 퇴보

정부의 이런 때아닌 정치공세는 문화·예술계를 정권의 유지 수단으로 보는 시각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화연대 심광현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좌파 공세는 결국 문화·예술계를 통제·관리의 대상으로 여기는 구시대적이고 과거회귀적인 시각에서부터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배성인 소장 역시 “현 정부는 문화예술을 정치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문화계  좌파 인사 척결을 통해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대중화하고 정권을 확고히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편향지원과 사전검열에 대해 예술인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영화계 내부에서 ‘좌파다,  우파다’ 라고 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라 일축했고 한 뮤지컬 제작 관계자는 “‘코드 지원’으로 점철된 문화예술계에서 작품 선정 기준마저 정치색이 우선시된다면 자유 창작을 모토로 하는 무대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렇게 정권 입맛에 따라 문화계를 통제하려는 정부의 시도는 문화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퇴보시키고 있다. 심광현씨는 “문화는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활동을 전제로 다양한 작품들이 활발하게 제작돼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치적 간섭이 강화돼 다양성이 퇴보하면 문화의 전반적인 침체가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편향적인 문화행정이 이뤄진다면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는 자기검열 현상도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경구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지금과 같은 불평등이 계속된다면 작품 제작시 좌절과 포기 심리가 확산되면서 현실 도피적이거나 민주적 가치를 부정하는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예술의 발전적인 미래는 어디에?

문화예술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우선 정부의 편향적인 시각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배성인 교수는 “모든 것을 좌, 우로 갈라버리는 색깔공세 아래 지원을 받지 못한 문화단체는 침체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현재의 색깔공세를 그만두고 좌파, 우파를 아우르는 균형감각을 지니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광현씨도 “정권에 대한 모든 비판을 좌파로 몰아 탄압하려는 현재의 단순 논리 아래서는 문화 민주주의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정부는 문화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심각한 자율성 침해에 대해 적극적인 저항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이어졌다. 실제로 지난해 225명의 영화인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에 대항해 시국선언을 한 것과 웹툰 작가들이 모여 이명박 정권의 악법을 비판하는 릴레이 웹툰을 연재한 것은 문화예술의 저항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 예다. 최근엔 한국작가회의에서 현 정권의 반민주적 탄압에 대해 전면전으로 나서 ‘저항의 글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이에 한국작가회의 고영직 대변인은 “그동안 문화계 내부에서도 정부가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하며 지원금에만 매달려 온 경우가 많았다”며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음으로써 자율성을 높이고 더 이상의 간섭을 차단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체부는 여전히 현 문화정책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문화를 정권의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자세를 고수하고 있는 상태다. 문체부와 문화예술계의 갈등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문화예술계의 봄날은 언제 올 것인지 당분간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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