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은 관객이 타고 있던 버스에서 시작된다. 버스 뒤편에 있던 여인이 갑자기 신고 있던 「빨간 구두의 마력에 이끌려 춤을 추고 옷가게 점원은 손님에게 옷에 맞는 몸을 주문하고 어떤 사내는 눈물을 흘리려고 일부러 양파껍질을 벗긴다.

동화에나 나올 법한 이 상황은 올해 '과천한마당 축제'와 '춘천마임 축제'의 야외극 공동공모에 선정된 극단 '몸꼴'의 거리극 빨간구두다. 버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은 현실과 환상의 모호한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낸다. 이처럼 도시 속 다양한 공간에 침투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예술을 '거리예술'이라고 부른다.

달콤한, 그러나 씁쓸한 거리예술

거리예술은 거리음악인을 뜻하는 외국의 ‘버스킹(busking)’에서 유래했다.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행해지는 거리 공연이었던 버스킹은 1973년 현 프랑스예술활동협회 회장인 쟝 디뉴가 버스커들을 대상으로 ‘액상프로방스 축제’를 주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내에는 1997년에 열린 ‘과천세계마당 극잔치’를 통해 거리예술이 소개됐다. 이후 2007년에 ‘경계없는 예술센터’가 설립되고, 2009년 ‘한국거리예술센터’가 창설되는 등 거리예술은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외에도 ‘나혜석거리예술 축제’, ‘서울프런지 축제’, ‘과천한마당 축제’ 등 거리예술 축제가 매년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거리예술이 받는 처우는 열악하다. 2007년 대안예술시장 ‘깨비시장’에서는 예술가들을 당혹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예술가와 인디밴드들이 함께 주최한 거리예술행사를 인근 관리사무소가 ‘소란스럽다’는 이유로 중지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09년 서울문화재단이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거리예술을 소음, 교통 혼잡의 원인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15%에 달했다. 서동진 문화평론가는 “거리예술은 타 예술분야에 비해 노출효과와 현장성이 커 관객 대부분이 무차별적으로 선택된다”며 “공연에 대한 사전공지 없이 현장을 접하거나, 공지를 접하고 오더라도 개인의 기호에 맞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끼기 쉽다”고 설명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서 펼쳐진 계명대 연극예술과 학생들의 공연 모습
사진: 매일신문 제공

거리예술, 그만의 매력은?

그럼에도 거리예술이 차츰 그 가능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계없는 예술센터’ 이화원 대표는 거리예술의 저력을 ‘소통’에서 찾는다. 그는 “거리예술은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장려한다”며 “메시지를 담은 극이나 퍼포먼스를 통해 엄격한 사회구조 속에서 시민들이 느끼는 체증이 해소된다”고 말한다. ‘게릴라 예술가’로 불리는 로버트 뱅크시의 낙서예술과 2008년 여의도 한복판에서 행해진 ‘웹(the web)’이 대표적이다. ‘웹’은 건물 사이에 커다란 거미줄을 쳐놓고 사람들이 걸려들게 해 인간관계의 망, 관습의 망 등 다양한 망 속에 갇힌 현대인을 표현했다. 그런가 하면 로버트 뱅크시는 낙서를 통해 자본주의, 전쟁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재치있게 비꼰다.

거리예술은 새로운 대안예술을 창조하기도 한다. 사이버 거리예술으로 유명한 영국의 ‘ABOVE’와 ‘GRL’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거리에서 선보인 후 인터넷에 올려 여러 사람과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를 통해 지역사회 문제를 이슈화시키는 등 예술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다. 박신의 교수(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는 “거리예술은 전통적인 창작-향유의 관계를 넘어 관객과 예술가 사이의 새로운 소통의 기회를, 더 나아가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킨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거리예술은 공연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공연가들이 작품을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이 도시문화의 상징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박 교수는 “거리예술이 활성화되면 다양한 장르가 진흥되고 수준 있는 작품이 창작될 것”이라며 “이는 관객의 문화 수준을 성숙시키며 결과적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코드가 창조된다”고 설명했다.

멈추지 않는 거리예술 희망을 품으려면

앞으로 거리예술이 발전하려면 우선적으로 거리예술가와 시민 사이의 마찰이 해소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런던의 ‘코벤트 가든’은 좋은 모범사례다. 코벤트 가든에서는 공연자들에게 허가증을 발급하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소음, 교통 혼잡 등 예술가와 시민 사이의 마찰요소를 철저히 관리한다. 여기에 매년 공연내용에 대한 안전 평가를 실시해 특정계층에 대한 비하 내용, 어린이에게 해로운 내용을 사전에 차단한다.

국내 거리예술의 자체적인 질적 향상 역시 중요하다. 서동진 문화평론가는 “최근 인사동, 대학로 등을 중심으로 거리공연이 확산되고는 있지만 수준이 낮다”며 “수준 높은 시애틀의 노스웨스트 민속생활축제와 일본 시즈오카의 다이도 게이월드컵을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해 평균 25만명의 관람객과 6,000여명의 예술가가 참가하는 노스웨스트 민속생활축제는 예술가들의 경쟁을 유도해 자체적인 질적 향상을 도모했다. 또 다이도 게이월드컵은 약간의 수당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세계의 거리공연가를 불러 모았다. 그 결과 현재는 각국에서 온 저글러와 마임이스트들의 홍보무대로 손꼽힌다.

한편 한국거리예술센터 임수택 감독은 거리공연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정부차원의 지원문제를 강조했다. 그는 “유럽에서는 거리예술이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장르로 자리잡은 데 비해 우리나라에선 거리예술을 다원예술의 하위 장르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워크숍이나 세미나를 개최해 세계 거리예술에 대한 정보와 아이디어 교류를 활성화하고 국내 거리예술 극단들의 작품 제작과 국외 진출을 장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최근 예술가 집단 내에서 거리예술의 저변을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오는 7일에는 서울프런지 축제와 과천한마당 축제 운영진의 주최로 워크숍 ‘거리예술 그 범주와 실체를 나누다!’가 개최된다. 그런가 하면 오는 9일부터 13일까지 여의도에서는  ‘2010 비아페스티벌’을 통해 엄격한 오디션을 거친 예술인들이 실력을 겨루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내 거리예술은 이제 날갯짓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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