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니」, 그래픽, 480 x 368, 1923
염세사상의 대표적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은 고뇌하는 영혼과 악마로 가득 찬 지옥”이라 말한 바 있다.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1914년, 세계는 1차 세계대전으로 고뇌와 악으로 가득 찬 쇼펜하우어의 ‘지옥’을 재현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참담했던 전쟁이 끝난 뒤 도시엔 여전히 전쟁의 참상과 잔재들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미술은 표현주의, 추상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현실에 대한 사실적 재현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미술 경향의 흐름에 대항해 일어난 작가가 있다. 더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기를 바랐던 신즉물주의 대표화가 오토 딕스다. 오는 5월 30일까지 서울대 미술관 MoA에서 열리는 「오토 딕스-비판적 그래픽과 동판화 연작 ‘전쟁’」전에선 당시의 참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 했던 오토 딕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그는 독일 사회가 보이는 병폐와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인류가 스스로 만들어낸 지옥을 그려내고자 했다. 작품 「거리(1920)」와 「성냥팔이(1920)」는 전쟁 때문에 수족을 쓸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경제적 지위 역시 박탈당해 거리를 전전하며 성냥을 파는 상이군인들의 현실을 그려냈다. 또 「레오니(1923)」와「포주여자(1923)」에서는 푹 꺼진 두 눈과 희번덕거리는 눈동자, 검붉은 피부를 가진 여성을 그리며 전쟁과 산업화를 통해 사회가 생산해내는 가난과 억압, 그리고 불합리를 거칠고 날카로운 동판화의 재질로 재현해냈다. 50점의 판화 연작으로 이뤄진  「전쟁(1924)」에서도 그는 전쟁이 낳은 파괴와 살육, 인간의 암담한 현실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며 전쟁의 위협적인 파장들을 기록하듯 그려냈다.
이처럼 오토 딕스는 전쟁과 급격한 산업화로 진통의 시기를 겪던 독일 사회의 혼란과 모순, 그리고 불안을 비판적 그래픽을 통해 낱낱이 폭로하고 기억하고자 했다. 그는 “모든 것은 자신의 눈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는 누구나 외면하고 싶던 삶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성과 야만성을 서슴없이 화면에 채워나갈 수 있었다.  

“추악한 것이야말로 미술의 대상이 되며 추악한 것이 인간의 진실을 말한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기존 미술이 추구해온 ‘미’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삶의 ‘추’와 ‘진실’을 들춰낸다. 추란 본래 드러내거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 이번 전시를 통해 자신의 삶 속 한켠에 감춰왔던 진실과 마주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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