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지성계 움직임 불구하고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명기
국제질서 새로운 재편 요구 속
안중근의 동양평화론 주목받아

이제는 유행어가 돼 버린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는 발언을 두고 한국 정부와 일본의 한 신문사가 진실게임을 벌이는 동안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명기한 초등학교 사회교과서를 검정에서 통과시켰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집요하게 움직였다. 금세기 초인 2002년 일본의 고교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이 처음 기술됐고, 다시 2008년 중등교과서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표기를 명기했으며, 드디어 2010년 소학교 사회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시했다. 2008년은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표기할 것이라는 방침을 알려줬다고 보도된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해였다. 여전히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지만 일본 정부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았고, 소학교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함으로써 한국 정부는 덤으로 뒤통수까지 호되게 맞은 셈이 됐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인에게 ‘국치’(國恥)인 이 사건으로 일본은 조선을 ‘병합’했고, 명실상부한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한국인들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과거의 굴곡진 역사로부터 새로운 교훈을 찾아내려고 하듯이 일본인 가운데에도 강제병합 100주년을 역사적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반성의 기회로 삼으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들, 학술연구단체들이 지난 1월 한 자리에 모여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안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야스쿠니신사 반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반대 등에 종사했던 관련 단체들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각론적 차원이 아니라 총론적 해결로 근본적 치료를 하자는 취지에서 이 기구를 만들었다. 일본 지성계의 발 빠른 대응에는 늘 감탄하지만 지식인들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잡지 ’세카이(世界)’ 2010년 1월호도 ‘한국병합 100年 - 현대에 묻는다’는 제호의 특집을 실었다. 그 특집의 일부인 대담 기사에서 와다 하루키는 ‘병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한국민의 인식에 동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그의 발언은 우익 이데올로그들의 격렬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을 소학교 교과서에 명기함으로써 일본 시민사회와 학계의 진지한 과거사 성찰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지금 영토 사방에서 영유권 분쟁을 하고 있다. 동쪽 끝에서는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환 문제로 일본 정부, 오키나와 주민, 미국이 긴장과 갈등상태에 있고, 서쪽 끝에서는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한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또 북쪽 끝에서는 러시아와 북방 도서를 둘러싸고, 남쪽 끝에서는 댜오위다오, 센카쿠열도를 놓고 중국, 대만과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한 전후 처리가 얼마나 졸속으로 처리됐는지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탈냉전 이후 이 지역의 국제질서가 새로운 재편을 요구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또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문제는 어느 것이나 과거사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한일 양국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세카이’는 2010년 2월호와 4월호에 연이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글을 실었다.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명분은 그가 자신의 동양평화론을 배반하고 한국을 강점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안중근은 그의 동양평화론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에서 방아쇠를 당겼을지 모른다. 한일 양국 사회는 과연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서 무엇을 계승하려고 하는 것일까? 한국 정부는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에 대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고, 그 실천 의지는 또 어떠한가? 대통령과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문제가 아니라 뚜렷한 역사의식과 냉철한 현실인식의 부재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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