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늦가을의 일로 기억된다.

 


요즘 시중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월간지 <말>은 당시 ‘불법간행물‘이어서, 대학가 부근의 몇몇 서점에서만 은밀히 유통되고 있었다. 그런데 가뜩이나 권력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이 지하간행물이 큰 ‘사고‘를 쳤다. 정권의 언론통제를 담당했던 문화공보부가 언론사 간부들에게 매일 내리던 ‘보도지침‘의 1년치 문서가 유출되어, <말>지 ‘특별호‘에 고스란히 게재된 것이다. ‘지침‘ 가운데에는 대학가의 반독재시위나 노동자의 분신 등과 같은 보도불가(不可)목록들은 물론, 심지어 버스요금 인상 기사도 제목을 ‘OO% 인상‘ 대신 ‘O십원 인상‘으로 뽑으라는 대목도 있었다. (오늘날 헤드라인에서의 교묘한 어휘선택을 통해 사실을 ‘비트는‘ 데 익숙한 몇몇 신문들의 노우하우는 아마도 이 무렵에 축적된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이 ‘보도지침 특별호‘가 지하출판물로 간행된 직후 권력의 대응이었다. 정보경찰들이 서점을 샅샅이 뒤지고, ‘특별호‘를 소지한 사람들이 모처로 끌려가 구입한 장소와 출처를 추궁당하리란 것은 예견된 상황이었다. 자료를 유출한 현역 신문기자와 <말>지 편집진 등이 오랏줄을 받게 된 것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기상천외한 것은 이들이 기소된 죄목이었다. 무지막지한 권력도 ‘언론통제‘의 명백한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못했는지, 아니면 한 일선 검사의 ‘유머감각‘에서 우러나온 소극적 저항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죄목은 ‘국가기밀누설죄‘였다.

 


그런데 정작 이보다도 더 재미있는 것은 1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민사회의 서 준수해야 할 ‘기밀‘이 도처에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담자들 모두 “옳다“고 주장하면서도 하나같이 자신이 언급되길 꺼려하는 16대 국회의 ‘마지막 거사‘의 주역 195명과 그들의 출마예상 지역구, 그리고 친일진상규명법의 주요 부분을 개정하는 데 앞장선 의원들의 명단 등이 바로 그러한 기밀사항이다. 이러한 기밀들을 철저히 단속할 막중한 책임과 권한은 18년에 걸친 민주화의 결과, 정보경찰로부터 ‘선거관리위원회‘로 이관되었다. 이 기관의 유권해석대로라면 선거에 영향을 미칠 특정 정치인과 특정 정당에 대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는 그 정치인이 당선된 이후에만 허용될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그 옛날 ‘보도지침‘을 충실히 이행했던 신문들은 선관위의 유권해석도 성이 차지 않는다며 더 엄격한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언론자유‘란 ‘자산 수천억대의 언론법인이 탈세할 자유‘만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처럼 18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치판과 시민사회에서는 보도지침을 만들고 이를 지키던 자들과, 이를 폭로하고 분노하던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 계속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전자를 전적으로 대변하는 정당은 어디일까? 쉿!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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