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 한혜영 기자
지난 26일(월) 사범대의 한 강의실은 외국어 연극제(외연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다로 가득 찼다. 연기에 대한 고민, 수준 있는 연출을 위한 방법 등 연극에 대한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지만 이는 결코 유쾌한 ‘수다’일 수 없었다. 외연제는 올해로 14년을 맞는 큰 행사이지만 학과별 배우 지원의 편중, 공연 공간 부족 등의 문제가 지속돼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최창문 기자  ccm90@snu.kr

이 자리에는 현재 노어노문 극단에서 활동 중인 이종현씨(노어노문학과·07), 작년 외연제의 총기획을 맡았던 하희정씨(영어영문학과·07), 작년 불어불문과 외연제 스텝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으며 현재 총연극회에서 활동 중인 한경훈씨(재료공학과·07), 2000년도에 서어서문 극단에서 활동했던 임용수씨(서문서문학과·00) 그리고 신은영 교수(불어불문학과)가 참석했다. 『대학신문』은 이들과의 토론을 통해 외연제가 갖는 의미와 관객은 모르는 외연제의 고충을 들어보고 어떻게 하면 외연제를 학생 문화 활동의 장으로 보다 활성화시킬 수 있을지 그 방향을 모색해봤다.

서울대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 그리고 '외연제'를 한다는 것

이종현: 저는 노어노문 극단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연극하는 사람들을 향한 부러움이 있었어요. 연극에는 작품에 대한 학문적 연구뿐 아니라 이를 무대에서 발산할 열정이 필요하거든요. 여기에 외국어를 직접 발음해보고 그만의 어감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게 외연제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임용수: 소설은 독자가 읽으면 완성이 되지만 희극은 무대 위에 올려야 완성이 된다는 점에서 이공계열 학생들의 실험처럼 ‘문학하는 사람들의 실습’이기도 하잖아요?
신은영: 맞아요. 본래 외연제는 불문과에서 연극 독회를 하던 학생들이 ‘읽기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무대에 올려보면 어떨까’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고 해요. 타 어문학과도 여기 참여하면서 인문대 전체 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됐죠.
하희정: 전 외연제에서 조금 다른 면을 봐요. 외연제는 인문대의 행사다 보니 각 과의 협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를 통해 회계·집행 등의 일을 배워보고 싶어서 극단에 들어오는 학생들도 있죠. 개인적으로 저도 외연제에서 삼년 동안 줄곧 스텝을 하면서 외연제가 운영되는 상황들을 속속들이 배울 수 있었어요.
임용수: 외연제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왜 외연제를 하는지 고민하는 것 같아요. 여타 연극동아리의 공연과 달리 단과대 차원의 행사로 볼 수도 있는가 하면 순수하게 예술성 있는 ‘연극을 위한 축제’로 볼 수도 있는 등 여러 관점이 공존하죠.
신은영: 교육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죠. 외국어를 습득하는 데 암기만큼 좋은 건 없어요. 학생들이 공연이 끝나면 자신이 언어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을 느낀다고 해요. 특히 관객용 자막 제작을 위해 꾸려지는 학생 번역팀이 국내에 미번역된 작품임에도 한국어에 담겨있는 미묘한 감정 표현을 외국어로 묘사한 대본을 만들어낸 걸 보고 제가 깜짝 놀란다니까요. 아마 그 뒤에 많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거겠죠.


위기의 외연제, 무대 뒤에선 무슨 일이?

한경훈:
외연제가 갖는 ‘외국어’란 특성은 양날의 검이 아닐까요? 연극이란 장르는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예술인데 일상어가 아닌 낯선 언어에서 어조나 강세의 변화를 통해 세밀한 감정을 표현하기란 어렵죠.
이종현: 솔직히 외국어 대본에 신경쓰다 보니 연기에 소홀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토씨 하나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거죠. 혹은 ‘외국어니까 관객들이 모르겠지’하고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있고요.
한경훈: 필연적으로 외연제는 한국어 연극보다 몇 걸음 뒤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한국어 연극배우가 연기에 전념할 동안 외연제 배우는 외국어 공부와 연기 둘 다 해야 하니까요. 차이를 극복하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한 반면 시간은 제한적이고요.
임용수: 그런 점이 배우 지원에도 영향을 미치죠?
이종현: 러시아어 같은 경우 능숙하게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학생들이 연극에 참여하고 싶어도 언어 때문에 다시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참여하다가 그만두는 경우도 많죠. 실제로 외국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연극을 올리지 못하는 과도 가끔 나오기도 해요.
하희정: 언어 자체의 수요도 지원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작년의 경우 독문과는 처음에는 지원자가 5명이었는데 그중에 2명이 힘들어서 나갔어요. 그런가 하면 영문과는 22명이나 지원해 그중 11명을 오디션으로 추렸죠.
신은영: 저만 해도 ‘외연제를 해야 졸업이 된다’고 신입생을 꼬시다 보니 ‘낚시꾼’이란 별명이 생겼어요. 하하.
하희정: 듣기로는 학생들이 전공진입에 유리할까 싶어 외연제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그래서 영문과의 경우 교수님들께서 외연제 참여 여부를 전공 진입에 반영하지 않기로 결정하셨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 걸 이용하겠다는 학생들만을 탓할 순 없는 문제지만요.
한경훈: 외연제는 주로 신입생이 무대에 서고, 스텝도 대개 1년만 참여하다 보니 ‘어차피  한 번하고 나가니까’란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려는 열정이 부족하고요. 총연극회는 선배들의 공연 자료가 대대로 전수되는 데 비해 외연제는 그런 기능이 약해서 아쉬웠어요.
하희정: 전반적으로 선배들과의 연계가 많이 부족하죠. 저만 해도 인수인계가 잘 안 된 상태로 총기획을 맡게 돼서 완전히 외연제를 새로 시작하는 심정이었거든요. 상설화된 공간이나 기구가 없다는 이유가 큰 것 같아요.
이종현: 각 극단끼리 교류만 많았어도 나았을 거에요. 물론 외연제 6개 과가 모이는 ‘어울마당’이 있긴 하지만 웃고 떠들면서 술 마시는 분위기이다 보니 정작 ‘연극’에 관한 교류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임용수: 단대에 상설화된 공간을 빌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하희정: 단과대 행정실에 말씀드려봤는데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당장 외연제만 해도 매년 두 과는 공연장소가 없어서 불가피하게 학교 밖의 외부 공연장에서 해야 하는 실정인걸요.
신은영: 학내 공간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는 거죠. 예전에 인문대 차원에서 외연제 극단에 두레문예관 공연장을 3주간 대여해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인문대 학생들이 공간 부족은 비단 외연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며 거절했죠.

우리 모두의 외연제가 되려면

이종현: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외국어’에 있다고 봐요. 외연제를 우리말로 진행해보는 건 어떨까요?
신은영: 하지만 그건 외연제의 위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요? 한국말로 연극하는 것은 굳이 외연제가 아니더라도 일반 연극동아리에서 할 수 있는 건데요.
이종현: 대부분의 외연제 극단이 원어 대본을 직접 번역해 관객용 자막을 만들잖아요. 번역한 대본을 상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외연제의 의의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외연제의 질이 한국어 연극에 뒤처지진 않지만 한국어가 아니기에 세세한 감정의 묘사나 극 구성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임용수: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사실 외국어에서 오는 압박감이 크다는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그럼에도 외연제의 가장 큰 존재 이유이자 동시에 외연제만이 갖는 특성은 외국어죠. ‘한국어로 안 해서 연극을 잘 못 한다’보다는 ‘외국어지만 완성도가 높다’는 게 좋지 않지 않을까요.
신은영: 학생들의 관심을 독려하는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외연제를 원전강독 수업과 연계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한 학기 동안 강독한 작품을 외연제에 올리는 거죠. 외연제의 주축인 1학년 학생들에게 어려움은 있겠지만요.
임용수: 글쎄요. 가령 러시아어의 경우 알파벳만 공부하는데도 몇 개월이 걸린다고 들었어요. 3, 4학년 선배들이 스텝이 돼서 도움을 준다고 해도 좀 어렵지 않을까요?
하희정: 그것이 가능하려면 각 과가 뭉쳐 동아리처럼 상설화된 외연제 기구가 조성돼야 하겠죠. 선후배 간 연극을 했던 자료를 축적해 전수하는 기회도 마련될 테고요.
이종현: 저희가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네요. 작년부터 노문과는 연극 비평회를 통해 극에 대한 평과 각종 노하우를 자료화 하고 있어요. ‘어느 공연장소의 경비아저씨가 친절하시다, 어떤 분이 깐깐하시다’까지요. 외연제를 돌아보는 자료집을 만들고 서로 공유하면 좋겠어요.
한경훈: 외연제의 문은 모든 서울대인에게 열려있음을 알리는 것도 중요할 거 같아요. 제가 외연제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대 불문’이라 적힌 스텝 모집 포스터 덕분이었거든요.
임용수: 그러게요. 사실 외연제를 ‘인문대만의 축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 이유는 ‘내가 참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희정: 그래서 기획의 역할이 중요한 거죠. 봄에 각 과가 개별적으로 주관하는 워크숍 공연을 모아 아예 ‘외연제 워크숍’을 열어보는 것도 외연제를 알리는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한경훈: 관객층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해요. 대부분 연극 단체에서 겪고 있는 일이지만 공연을 보러오는 관객층이 한정적이죠. 지인이 오는 건 좋지만 이는 곧 공연을 객관적으로 평해줄 수 있는 사람이 부족하다는 문제로 직결되죠.
하희정: 외연제에 참여하려면 방학을 거의 다 쏟아 부어야 함에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많아요. 방학 동안 외연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활동을 평가해서 학점을 준다든지 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신은영: 그 문제는 ‘자율연구수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지원금도 나올뿐더러 일주일에 한번 이상 모여야 하니까 정기적이거든요. 아, 지원금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다른 과 상황은 어때요? 불어불문학과는 대사관으로부터 일부 지원받고 있거든요.
하희정: 과마다 자금 조달 방식은 조금씩 달라요. 영어영문학과의 경우 학생들이 연극단을 꾸렸다니까 동창회에서 기금을 조성해주신 사례가 있어요.
신은영: 주말에 공연 수요가 많지 않을 때 각 단과가 뭉쳐 홈커밍데이 공연을 해보는 것도 좋은 거 같네요. 덧붙여서 공간 확보 문제가 개선되기를 꿈꿔 봐요. 이는 연극을 좋아하는 학생들 전체의 문제잖아요. 학내에 공연과 수업이 병행 가능한 장소가 마련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