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하는 법을 잊은 이들을 조명하는 침묵의 눈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의 언어는 ‘아담의 언어’ 하나였다. 하지만 대홍수 이후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는 신을 믿지 못한 인간들이 하늘에 맞닿는 탑을 쌓으면서 신은 분노한다. 분노한 신이 인간에게 내린 벌은 바로 소통의 불협화음, 언어의 분리였다. 이로써 탄생한 언어를 ‘바벨의 언어’라고 한다. ‘단절’을 방점으로 하는 바벨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일까. 사람 간의 많은 부분의 갈등과 폭력이 바로 이 소통되지 않는 언어 때문에 생겨나고 있다. 의사소통의 단절 앞에 소통의 끈을 찾지 못하고 부유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지난 6일(목)과 7일 두레문예관에서 막이 올랐던 총연극회의 연극 「퍼블릭 아이」는 소통하는 법을 잊은 두 남녀에게 대안을 찾아주는 한 탐정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불꽃 같은 사랑에 이끌려 결혼에 골인한 찰스와 벨린다는 2년 뒤 서로에게 차가워지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찰스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벨린다가 정숙하지 못하다며 비난하고 벨린다는 그의 지루하고 답답한 말투에 질려 버린다. 돌변한 벨린다의 태도에 찰스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고 결국 사립 탐정까지 고용하게 된다. 그가 고용한 사립 탐정 줄리안 크리스토포루는 딱 붙는 체크 바지에 우스꽝스러운 레인코트를 입고 시종일관 단 것을 먹어대는 괴상함을 보여주지만 찰스와 벨린다가 아직도 깊게 사랑하고 있음을 간파해낸다.

그들의 문제는 각각 감성과 지성이라는 언어에 파묻혀 대화가 겉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제발 내 말을 듣고 이해하려고 해봐. 그따위 꽃이나 만지작거리지 말고”라고 소리를 지르는 찰스에게 벨린다는 “당신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는 학교에 온 느낌이에요”라며 질릴 뿐이다. 보기만 해도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던 둘이었지만 이성과 감성이라는 섞일 수 없는 다른 언어를 구사했기에 그들의 사랑은 상처입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크리스토포루는 이런 그들에게 ‘침묵의 언어’를 제안한다. 말을 하진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서로 이해하고 맞춰가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결국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며 공연의 막이 내린다.

우리 마음속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이기심’이라는 작은 바벨탑이 세워져 있다. 굳게 세워진 마음속 바벨탑을 무너뜨리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연극은 찰스와 벨린다의 소통을 다루지 않은 채 끝맺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바벨의 저주 속에서도 희망은 보인다. 오만함을 벗은 진심의 침묵, 그 앞에서 언어의 저주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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