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동향] 새로운 전기 맞는 극지 기후변화 연구

국내 최초 쇄빙선 출항, 기후변화 연구 중심지로 거듭나는 극지
이상 기온현상 설명하는 북극진동 · 소빙하기 이론 눈길 끌어

석유, 가스 하이드레이트와 같은 지하자원과 미생물자원이 풍부한 극지역은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로 여겨진다. 여기에 최근 몇 년간 두드러진 이상기후 현상은 과학자들이 극지역의 새 가능성에 주목하게 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실마리를 찾는 데 극지가 탁월한 연구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극지는 자원탐사 보고에서 기후변화 연구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기후변화 연구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극지

기후변화 연구에서 극지가 관심을 끄는 것은 우선 극지 자체의 특성 때문이다. 지표를 구성하는 물체들 중 모래나 풀은 태양에너지 반사율이 0.3~0.4%에 불과해 에너지 대부분을 흡수한다. 이와 달리 빙하는 태양에너지의 70%를 반사하기 때문에 빙하지역은 정상기후에서는 늘 찬 공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온난화가 진행되면 빙하가 녹으면서 극지의 태양에너지 흡수량이 훨씬 많아진다. 다른 지역보다 에너지 흡수량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극지역의 온난화는 더 빠르게 진행된다. 극지연구소 김성중 책임연구원은 “빙하로 이루어진 극지역은 인간이 사는 지역에 앞서 온난화가 진행되므로 온난화가 가져올 기후변화를 예측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밝혔다.

또 극지역은 심층해수의 발원지이기에 기후변화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심층해수는 극지와 적도를 순환하며 적도의 열기와 극지의 한기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심층해수가 만들어지려면 해수 염도가 높아야 하는데 빙하가 녹을수록 염도가 낮아져 심층해수가 형성되지 못한다. 이 경우 극지와 적도의 열 순환이 정지돼 이상기후가 온다. 홍성민 교수(인하대 해양학과)는 심층해수 순환에 대해 “기후 변화 시스템에 관여하는 주요인이므로 이를 직접 모니터링 할 수 있는 극지에서의 연구가 중요한 때다”고 밝혔다.


폭설과 4월 강추위는 소빙하기의 근거?

지난겨울에 닥친 한파에 대해 김성중 박사팀은 ‘북극진동’ 이론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북극진동은 극지역 저기압대와 중위도지역 고기압대의 대기압 차로 일어나는 대기의 진동이다. 북극의 기압변화에 의해 북극의 냉기가 중·저위도 지역으로 내려가기도, 다시 올라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북극진동지수는 두 압력의 경사로 측정되고 경사가 급하면 양의 값, 경사가 완만하면 음의 값을 가지며 보통 -4~+4 범위의 값을 가진다. 극지역의 기압이 평년보다 높아져 중위도지역 기압과의 차이가 줄면 시베리아 찬 공기가 유입되는데 지난 겨울 한파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 12월  북극진동지수가 -6까지 내려간 것을 확인하고 ‘북극진동’이 한파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성중 연구원은 “지난겨울 북극진동지수가 -6까지 내려간 것은 100년에 한 번 일어나기도 어려운 현상으로, 혹독한 추위의 원인 역시 북극진동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북극진동지수 연구를 토대로 지난 1월 한파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극지연구소 윤호일 박사팀은 짧은 기간에 극도의 변덕을 부리는 현재 날씨에 ‘지구온난화에 의해 억제된 소빙하기’라는 답을 제시한다. 윤 박사 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남극 연안 맥스웰 만의 수심 100m 빙하퇴적물의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분석한 결과 500년 주기로 소빙하기가 돌아왔다. 또 연구팀은 빙하기의 전조로 여겨지는 육지 기원 물질과 플랑크톤의 번성, 북대서양 심층해수 순환의 약화 등 일련의 상황들을 지구가 소빙하기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보고 있다. 연구에 참여한 유규철 선임연구원은 “소빙하기에 접어들었지만 지구온난화로 그 진행이 ‘억제’되고 있기에 추후 급격한 기후 변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새로운 전기 맞은 극지 연구

한국은 지금으로부터 상당히 오래전 극지 연구를 시작했지만 이제껏 연구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었다. 1988년 킹조지섬에 남극 세종기지가 건설돼 본격적으로  극지에서 기후 연구가 시작됐다. 한국 극지 연구진은 빙하의 기포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를 추출해 연대를 분석하고 눈이 내릴 당시 기후를 복원하는 고(古)기후 연구와 함께 미래 기후를 예측해왔다. 그러나 연구를 깊이 진행하기에 세종기지는 사실상 남극대륙을 상당히 벗어나 있다.  본격적인 극지 연구를 수행하기엔 어려움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 국토해양부와 극지연구소가 동남극의 ‘테라노바베이’에 제2남극기지 건설을 발표해 극지 연구에 새 가능성을 제시했다. 제2기지 후보지 정밀조사단으로 탐사에 참가한 손호웅 교수(배재대 건설환경·철도공학과)는 “테라노바베이 후방에 위치한 빙하 덕분에 세종기지에서 부진했던 빙하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 지역의 근처에 심층해수가 형성되는 로스 해역(Ross Sea)이 있어 심층해수도 모니터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12월 남극에 파견된 국내 최초 쇄빙선 아라온호가 88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무사히 귀항했다. 아라온 호의 건조가 완료됨과 동시에 외국에서 극지 기후에 관한 공동연구 제안이 들어왔을 정도로 쇄빙선은 한국 극지 연구가 도약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좌표다. 아라온호는 오는 7월 새롭게 북극 항해를 시작한다.

물론 극지 연구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홍성민 교수는 “쇄빙선을 제대로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충분한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중추인 극지연구소 조차 아직 해양연구원에서 독립한지 2~3년 밖에 되지 않아 연구인력과 재정이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일본은 빙하 하나를 뚫기 위해 수백억원의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만족스럽지 못한 환경속에서도 지속해온 극지연구가 근래에 거둔 성과를 발판으로 더욱  도약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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